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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우리만의 리그… 음악도 널 사랑해줬어?

입력 2022-04-28 03:00업데이트 2022-04-28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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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야구도 널사랑해줬어?’(작은사진)를낸 음악가 전상규 씨. 야구 시즌이 열렸다. 더구나 가정의 달, 5월이 코앞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잡고 들판(野)에 나갈 시간이다. 동아일보DB
임희윤 기자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

제목이 의문문인 책은 늘 도발적이다. 이 신간의 저자 전상규 씨는 스포츠인이 아닌 음악가다. 밴드 ‘와이낫’의 리더다. 15년간 치킨, 주유소, 전자제품, 빵집, 빙과류 등 다양한 광고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비틀스 마니아들에게도 친숙하다. 헌정 밴드 ‘타틀즈’의 리더 ‘전 레넌’이 상규 씨의 또 다른 자아다. 동료 멤버 ‘조 카트니’에게 작명 파워에서 밀려서 그렇지, 입담만큼은 끝내준다.

#1. ‘음악이 좋냐, 야구가 좋냐’라고 묻는 기자에게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고 반문하던 그가 마침내 야구에 대한 에세이를 낸 것이다. 인기 야구 팟캐스트 ‘야잘잘’의 진행자이자 팬데믹 동안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에 몇 차례 출연해 한국 프로야구 이야기까지 재미나게 소개한 그이다.

#2. 음악가가 쓴 야구 에세이이니 음악과 야구를 비교하는 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수려한 외모와 팬덤 발흥 간의 상관관계를 다루면서 전 선린상고 박노준 선수와 미국 록 밴드 본 조비를 병치한다. 엘지 등번호 9번 이병규의 은퇴 경기를 돌아보며 비틀스의 아홉 번째 앨범 ‘The Beatles’, 노래 ‘Revolution 9’ ‘#9 Dream’ 등 숫자 ‘9’에 유난히 집착한 고 존 레넌의 기벽을 소개하기도 한다.

#3. 그러고 보면 야구를 사랑했던 음악가가 한둘은 아니다. 야구는 순위의 스포츠다. 끝없이 1위, 2위, 3위를 다툰다. 리그별로 다투고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월드시리즈로 갈무리한다. 영국 최고의 밴드 100선, 불어권 가수 톱 10 따위를 저마다 꼽고 비교하며 다투는 무리가 음악 마니아 아닌가. 더욱이 야구팬은 암기 왕이다. 원주율은 몰라도 응원 팀 7번 타자의 올 시즌 타율 세 자리 정도는 소수점 밑으로 줄줄 왼다. 구원투수가 몇 년도에 어느 팀으로 이적했는지 따위 역시 말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Life on Mars?’(1971년)에서 피아노를 친 인물이 밴드 ‘스트로브스’와 ‘예스’의 릭 웨이크먼이라는, 다른 이들은 관심 없는 사실을 금과옥조처럼 대뇌피질 한쪽에 담아둔 음악광이 바로 저런 부류의 인간 아니던가. 극단의 둘은 통한다.

#4. 음악과 야구는 천생연분이다. 야구장에 응원가가 빠질 수 있겠는가. 레이디 가가, 카녜이 웨스트 등을 무대에 세운 미국의 콘서트 기반 사회적 기업 록코어(Rockcorps)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인 스티븐 그린 씨는 서울에 올 때마다 잠실야구장에 들른다. 응원하는 팀은 없다. 어떤 팀이 나오는지도 중요치 않다. 무조건 좌석을 예약한다. 야구광인 그는 몇 년 전 이곳을 찾았다가 케이팝이 쩌렁쩌렁 울리는 치어리딩과 치맥이 공존해 왁자지껄한 한국식 응원문화 그 자체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5. 야구광은 아니지만 야구 영화 몇 편은 좋아한다. ‘탑건’도 연출한 고 토니 스콧 감독의 ‘더 팬’(1996년)은 팬과 스타의 위험한 조우를 그린 스토리만큼이나 한스 치머와 나인 인치 네일스의 박진감 넘치는 음악이 좋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머니볼’(2011년)에서 주인공의 딸이 기타 가게에서 ‘The Show’를 부르는 장면(QR코드)은 더없이 사랑스럽고 뭉클하다. 야구 영화에는 가정의 가치, 특히 부정(父情)에 관한 이야기가 곧잘 등장한다. 뭇 예비아빠들의 출산 판타지인 ‘아들 낳아 함께 캐치볼 하기’ 때문일까?

#6. ‘야구도 널 사랑해줬어?’를 쓴 전 씨의 야구에 대한 짝사랑이 올해로 40년 됐다. 1982년, ‘아부지’ 손을 잡고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미도파백화점에서 MBC 청룡의 어린이회원으로 등록하며 그는 야구를 영혼에 등록했다. 그 40년 애정을 이제 가계도 아래로 물려주려 한다. 엘지 트윈스의 지독한 팬인 그는 지난해 태어난 아이의 이름 ‘지우’에서도 ‘엘지우승’을 떠올린다고 하니 별난 조기교육이 어떨까 벌써 궁금해진다.

#7. 어쩌면 야구의 영혼이자 핵심이야말로 가정 아닐까. 집 나간 선수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게임이니 말이다. 1루, 2루, 3루라는 이름의 먼 누각에 갇혀 전전긍긍하는 우리 사람들을 구출키 위해 오늘도 팀의 후속 타자는 타석에 선다. 본인은 전사할망정 그들만은 귀환시키겠다며 장렬한 희생번트와 희생플라이까지 날려가면서 말이다. 북유럽 전사들은 죽지 않는다. 발키리를 따라 발할라로 갈 뿐이다. 지구 위 모든 타자는 죽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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