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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명성의 초상[이은화의 미술시간]〈211〉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2-04-21 03:00업데이트 2022-04-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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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마오’, 1973년.
앤디 워홀은 코카콜라, 캠벨 수프캔, 브릴로 상자, 매릴린 먼로 등 미국을 상징하는 상품이나 스타를 그려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가 됐다. 1972년 그는 처음으로 정치적인 작품을 제작했는데, 바로 마오쩌둥의 초상화였다. 항상 정치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던 그가 왜 갑자기 중국의 정치인을 그렸던 걸까?

1970년대 초 워홀은 자신의 오랜 후원자였던 브루노 비쇼프베르거의 제안으로 20세기 가장 대중적이고 중요한 인물의 초상화를 제작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염두에 뒀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당시 마오쩌둥은 영웅과 독재자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데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회주의 지도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초상사진은 세계 도처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워홀이 마오를 그리기로 결심한 건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최초로 중국을 방문한다고 발표했을 때였다. 완강한 반공주의자였던 닉슨의 중국 방문은 워홀에게 큰 충격이자 작품의 영감이 됐다. 정치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19세기 영국 정치가 파머스턴의 말도 떠올랐을 테다.

워홀이 선택한 이미지는 ‘마오 주석 어록’에 실린 흑백 초상화다. 휴대용으로 작게 제작된 이 책은 마오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문화대혁명 기간 중국민이라면 의무적으로 휴대해야 했다.

워홀은 1972년부터 1973년 사이 10점의 다양한 마오 초상화를 제작한 뒤 이를 각각 수백 점의 에디션으로 복제했다. 이는 닉슨의 방중 뉴스 보도가 TV에서 지속적으로 반복 재생되는 것에 대한 비유이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에서 대량 생산되고 유통된 마오의 초상은 더 이상 위압적이고 영웅적인 정치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코카콜라처럼 가볍고 먼로처럼 화려한 팝아트의 아이콘이 됐다. 어쩌면 워홀이 그리고자 했던 건 마오쩌둥이라는 유명인의 명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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