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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안목 있는 화가[이은화의 미술시간]〈212〉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2-04-28 03:00업데이트 2022-04-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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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판리셀베르허 ‘안나 보슈’, 1889년경.
비운의 천재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 가난과 광기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그는 평생 딱 한 점의 그림을 팔았다. 모두가 외면하던 고흐의 작품을 기꺼이 구매한 이는 바로 벨기에 화가 안나 보슈다. 보슈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국의 무명 화가 그림을 어떻게, 왜 수집한 걸까?

보슈는 벨기에에서 활동한 인상주의 화가다.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동생 외젠과 함께 여유롭게 화가 활동을 하며 젊은 화가들의 작품도 수집했다. 그녀가 평생 수집한 작품은 431점이나 되었다. 보슈는 벨기에의 급진적인 미술가 20명으로 구성된 그룹 ‘20’의 회원이기도 했다. 이 초상화는 같은 그룹 회원이던 테오 판리셀베르허가 그렸다. 점묘법으로 그려진 그림 속 보슈는 한 손에 팔레트를, 다른 한 손에 붓을 쥐고 먼 데를 응시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전문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초상화다. 20인회 그룹은 연례 전시회를 열면서 해외 작가들도 초대했는데, 1890년 전시에는 폴 시냐크, 폴 세잔, 폴 고갱과 함께 반 고흐도 초대됐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비롯해 총 6점을 출품했는데, 그중 ‘붉은 포도밭’을 보슈가 400프랑에 구입했다.

사실 보슈의 남동생 외젠은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서 알고 지내던 가까운 친구였다. 누나는 동생을 통해 고흐의 사정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고흐의 재능도 높이 샀지만, 작품 구입으로 동생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해 여름, 고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이 그림은 고흐 생전 판매한 유일한 작품이 됐고, 보슈는 고흐 그림의 가치를 알아본 유일한 컬렉터가 되었다.

보슈는 안목 있는 좋은 화가였지만, 생전에 인정받지는 못했다. 1936년 사망하면서 140여 점의 작품을 집 정원사의 딸에게 남겼다. 그녀의 종손이자 명품 도자 기업 ‘빌레로이 앤 보흐’의 회장인 루이트빈 폰 보흐가 1968년 이를 다시 사들여 공개하면서 비로소 화가로서 재조명 받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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