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수영]6월 1일 너머에 있어야 할 윤석열의 시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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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 정치부 차장
홍수영 정치부 차장
19세에 상경했으니 이제 서울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졌다. 그럼에도 굳이 여의도 용어로 말하자면 ‘충청의 딸’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대전 구도심을 볼 때는 여전히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선거철마다 주워섬기는 ‘○○의 아들, 딸, 사위, 며느리’를 들으면 “저건 가짜”라고 속으로 텃세도 부린다. 나는 떠나왔지만 누군가는 고향을 살뜰히 챙겨줬으면 하는 마음, 그게 ‘지방민’의 정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요즘 ‘지역 균형발전’에 꽂혀 있다고 한다.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오찬에서도 뜬금없이 지역 균형발전론을 꺼냈다. 한 의원이 다섯 쌍둥이를 출산한 군인 부부의 사진을 보여주자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는 지역 균형발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선문답을 했다. 지역의 인구 감소세가 특히 심각하기에 한 얘기로 보인다. 여하튼 균형발전을 국가의 미래를 위한 필수과제로 여기는 듯해 반갑다.

이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6·1지방선거와 일정이 맞물려 돌아가는 특이한 인수위다. 각 당의 후보 공천과 공약 준비가 인수위 활동 기간에 이뤄진다. 5월 10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일주일여 뒤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가 22일 뒤 결과가 나온다. 윤 당선인으로서는 0.73%포인트 차 대선 신승, 불리한 국회 의석 구성을 돌파하려면 지방선거 승리밖에 답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윤 당선인 주변에서도 애가 탄다. 윤 당선인을 “예뻐 죽겠다”고 말하는 한 정치권 원로는 3월 중순 인수위 출범을 지켜보며 “지역에 선물을 줘야 하는 인수위인데,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며 걱정했다.

그 인사도 이제 걱정을 덜었을 것이다. 윤 당선인 스스로 현 시점의 정치적 의미를 또렷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때문에 요즘 잠이 안 온다”는 윤 당선인은 이번 주 ‘대국민 업무보고’라는 타이틀로 지역 순회를 시작했다. 안동 중앙시장, 포항 죽도시장, 대구 서문시장 등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를 돌며 특유의 ‘어퍼컷’도 선보였다.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지역 공약도 열심히 챙기고 있다. 식사 자리에서 대선 공약인 KDB산업은행에 더해 한국수출입은행의 부산 이전까지 즉석으로 꺼내 ‘묻고 더블로 가!’를 외친다.

지방 출신으로 윤 당선인이 말한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도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 나라”를 진정 바란다. 그렇다고 한 달 후 국가 최고지도자에 오를 윤 당선인의 시계(視界)가 6월 1일에 있는 건 곤란하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이 2년에 한 번꼴로 있는 전국선거를 위해 1년짜리 예산안을 들고 여기저기 정합성 없는 공약을 흩뿌려서는 균형발전은커녕 되레 국가에 짐이 된다. 국민에 대한 충정이라 해도 지방민들의 열패감만 더 커질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취임하면 첫 서울 출신 대통령이 된다. ‘빚’이 없기에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지역에 얽매여 국정을 펼 필요도 없다. 2027년 5월 9일, 윤 당선인의 퇴임 기사를 쓸 때 그의 공언대로 본격적인 ‘지방시대’를 연 대통령이었다고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홍수영 정치부 차장 gaea@donga.com
#6월 1일#윤석열#윤석열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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