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거북 앞에 놓인 생사의 위기들[서광원의 자연과 삶]〈51〉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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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자연은 자세히 볼수록 느껴지는 게 참 많다. 거북의 삶도 그렇다.

바다거북은 망망대해를 헤엄쳐 살다가 때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들이 어떻게 그 넓은 바다를 헤치고 정확히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지는 아직도 다 모른다. 묘한 건, 그렇게 먼 길을 온 거북들이 최종 목적지를 눈앞에 두면 곧바로 상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가 있다. 거북의 패턴을 안 상어들이 근처 어딘가에서 ‘목 빠지게’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이 되기를 기다려 상륙한다.

뭍에 오른 이들은 모래 해변에 구덩이를 파서 알을 낳는데 주변의 바다 새들과 여우 같은 포식자들이 영양가 가득한 알을 노리기 때문이다. 30cm쯤 파야 안전하지만 말이 30cm이지 뭉툭한 뒷지느러미로 이 깊이를 파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밤샘 작업을 한 끝에 50∼70개 정도의 알을 낳은 후 다시 바다로 떠난다. 파충류라 모자간의 정은 고사하고 평생 얼굴 한 번 볼 일 없는 게 이들의 운명이다. 우연히 보면 몰라도.

따뜻하고 안전한 모래 속 알들은 두 달쯤 됐을 때 부화한다. ‘부모’ 없으니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하지만 다행히 조상들이 마련해준 임시 치아가 있어 대체로 무사히 나온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어른 손가락만 한 새끼들에게 ‘지하 30cm’는 엄청난 깊이인 까닭이다. 이 어마어마한 장벽을 어떻게 극복할까? 무엇이 그렇게 하게 하는지 모르지만 스스로 기적을 만든다. 서로 방향을 분담해 모래를 파헤쳐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제 된 걸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더 험난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바다 새와 여우들이 어디 가지 않고 이제나 저제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앞만 보고 바다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우리에겐 몇십 m 안 되는 거리가 이들에겐 멀고 먼 울트라 마라톤 코스가 된다.

이 공포의 레이스를 통과해 바다에 도달하는 새끼 거북은 불과 1% 남짓. 100마리 중 한 마리 정도다. 한참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거북 역시 0.1%, 그러니까 1000마리 중 한 마리꼴이다. 요즘은 바다를 향해 달려야 할 새끼 거북들이 반대로 달리는 일이 많아 생존율이 더 낮아지고 있다. 바다에 비치는 빛을 향해 달리는 본능이 가로등이나 차량 불빛을 그 빛으로 착각해서다. 방향을 잘못 잡은 새끼들에게 비극은 필연이다.

이게 어디 거북만의 일일까? 어려움을 넘어서면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고 수많은 위기가 첩첩산중이 되는 일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거북의 삶이 그렇듯, 세상에 나오는 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무엇보다 엉뚱한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거북이#생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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