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을 둔 아빠가 본 여성가족부 논란[폴 카버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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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며칠 전에 스팸처럼 보이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벨이 울렸다. 보통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그날도 답변 없이 지나갔는데 며칠 후 같은 번호로 연락이 왔다. 여전히 응답은 하지 않고 발신자가 누구인지 검색을 해 보았다. 재미있게도 이번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이 발신자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후보는 나에게 전화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대선 투표권이 없는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 의문의 후보가 한국 대선에 별 관심이 없는 몇몇 내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꽤 높은 후보라는 사실이다.

나에게 투표권이 없기는 하지만 이번 대선은 나에게는 다소 의미 있는 선거다. 왜냐하면 내 아들 녀석이 드디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첫 선거이기 때문이다. 아들과 이번 선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내 인생의 첫 선거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어리고 젊은 10대였던지라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후보 중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보다는 내 이상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당의 후보에게 투표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다.

나에게 젊을 때의 이상주의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인지, 아들이 누구를 투표하는 것이 나을지 물어보았을 때 영국의 상황과 비교해서 설명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설사 내게 투표권이 있더라도 누구를 뽑을 것일지 조금 난감하긴 했다. 왜냐하면 영국의 보수와 진보 성향을 기초로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꽤 진보적이라는 정책도 영국에서는 중도 혹은 심지어 보수적 성향에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시간과 같은 노동자 권리나 성소수자 관련 정책 등이 그렇다.

요즘 한국 대선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내용 중 하나가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치와 종교 문제는 가족 간 대화라 할지라도 피하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한 방법인지라 내 의견을 이 칼럼을 통해 피력하는 것이 많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나 스스로도 이 부서의 폐지에 대해 찬성한다 아니다를 가지고 논쟁할 처지도 아니고 그만큼 한국 정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도 않다. 아들딸 각각 하나를 낳아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어떤 입장에 서는 것이 그만큼 난처하기도 하다.

통금이나 데이트 시간 등에 대해 아들은 좀 더 자유롭고 딸에겐 좀 더 엄하게 적용하는 집안 규칙이 있다. 딸은 좀 불평등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대신 아들에겐 용돈 사용을 조금 더 엄하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다른 면에서 조금 불평등한 룰을 적용한다. 딸도 똑같이 사랑받는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노력인데, 나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부모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싶다.

몇 달 전 온 세계를 휩쓸었던 ‘오징어게임’과 같은 드라마를 보면 부를 축적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너무나 큰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사회의 불평등을 쉽게 떠올리고, 관련된 문제의식에도 모두 쉽게 공감하지만 이 문제가 남녀평등의 사안으로 옮겨지면 쉽지 않다. 물론 사회적 부의 불평등한 분배 문제와 남녀평등 문제가 매우 다른 성격의 사회적 사안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한국의 정치를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영국에서는 총리(Prime Minister)로 누가 뽑히느냐에 따라 부서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통폐합되기도 하는 변화를 겪는다. 현재 영국에서는 한 명의 장관이 외교부, 내무부, 여성과 사회평등 정책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성가족부를 유지할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는 문제의 본질은 아닌 듯하다. 물론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한국의 유권자들이 결정할 일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되든 내 딸도 내 아들도 똑같이 사랑받는 정책을 누가 대통령이 되건 꼭 실행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여성가족부 논란#아빠가 본 여성가족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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