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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김도연 칼럼]교수노조 생기는 대학, 교수 정년보장 없애는 대학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22-01-27 03:00업데이트 2022-01-2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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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설립해 임금·인사 개입하는 교수들
자기 권익보다 희생 수용 전통 사라져
美 조지아, 교수정년 불인정해 경쟁 유도
급변하는 세계대학 속 우린 어디에 있나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금년 초, 서울대에서는 교수노동조합과 총장이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맺었다. 이번 협약에 따라 앞으로 교수노조는 매년 총장과 임금을 협상하고 신규 임용이나 승진 인사(人事) 등 제반 대학경영에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2018년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여러 대학에서 교수노조가 탄생했는데, 이번 서울대의 솔선으로 다른 많은 대학도 여기에 합류할 것이 틀림없다.

20세기와 더불어 본격적인 산업문명시대가 열리며 제품을 대량 생산해 큰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출현했고, 이를 위해 기업주는 다수의 노동자를 고용해 엄격히 통제했다.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으며 때로는 기본적 인권까지 침해당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조합을 만들었고 그 후 소위 노동 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을 쟁취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노동조합 활동의 긍정적 측면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게 마련인데, 요즈음 흔히 이야기되는 귀족노조는 그림자의 일부분일 듯싶다. 사회적 약자의 범주에서 훌쩍 벗어난 것으로 믿어지는 힘 있는 조합원들이 더 큰 권익 확보를 위해 벌이는 단체 행동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으며 이들 대다수는 조합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리더이며 강자인 대학교수들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 전통으로는 그림자도 밟지 않을 정도로 존경하던 존재가 스승이었다. 가르치는 사람들이라면 자기 권익을 챙기는 일보다 오히려 봉사에 치중하며 상당한 자기희생도 수용했다는 의미다. 이런 전통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는 교수들조차 이렇게 스스로를 위해 단결하는 것이 안타깝다. 대학마다 존재하는 교수협의회를 넘어 노조만이 추진할 수 있는 절실한 일들은 과연 무엇일까?

일반 사회인들의 시각에서 대학교수들은 이미 엄청난 권리를 누리고 있으며, 그 핵심은 직업안정성이다. 실제로 교수들 대부분은 30대에 조교수로 처음 임용된 뒤 40대에 이르면 정년을 보장받는다. 그 후 65세까지 아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니, 다른 사회 조직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꿈같은 직장이다. 교수 정년 보장은 권력자와 의견을 달리해도 이를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를 위해 미국 대학에서 100여 년 전에 도입된 제도다. 물론 교수들이 조합활동을 통해 어렵게 쟁취한 소중한 권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선진 사회라면 정치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교수는 없으며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정년 보장은 대학 내에서도 무책임한 교수까지 보호하거나 혹은 교수를 게으르게 만드는 불필요한 제도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나마 미국에서는 정년 보장 후에도 매년 교육 및 연구 성과를 평가해 이를 교수 연봉에 직접 반영하는 것에 비해 우리는 정년까지 계속 봉급이 오르는 호봉제가 대부분이다. 우리 대학의 정년보장제도는 일부 교수들이 본연의 업무를 팽개치고 선거철이면 후보들의 캠프활동에 전념하는 도덕적 일탈까지 조장하는 듯싶다.

그런데 가장 먼저 교수정년보장을 도입한 미국 대학들이 이 제도를 폐지하는 일에도 다시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조지아 주(州)정부의 대학위원회는 관할하고 있는 28개 모든 공립대학에 대해 교수정년보장 폐지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모두 6000명에 가까운 이미 정년보장을 받은 교수들의 기득권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교수들이 정년보장 후에도 쉬지 않고 교육과 연구에 노력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대학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취지다. 그리고 교수 업적 평가에 교수가 학생 성공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반영키로 했다.

교수 중심으로 돌아가던 대학이 이제는 학생 중심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반발은 거세며, 해당 교수들은 정년보장 폐지로 조지아주의 대학교육이 완전히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어느 쪽 의견이 맞을까? 여하튼 오늘의 대학경쟁력이 미래의 국가경쟁력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세계의 대학들은 앞다퉈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우리 대학들의 교수노조가 조합원들의 권익 강화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단체는 아닐 것으로 믿는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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