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성대모사 은퇴선언[2030세상/박찬용]

박찬용 칼럼니스트
입력 2022-01-25 03:00업데이트 2022-01-25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박찬용 칼럼니스트
일주일에 한 번 라디오 방송에 패널로 나간다. 주제는 한 주 소식. 조용한 분위기의 심야 생방송 라디오고, 화물차나 택시 등 운전 직군 종사자와 밤잠 없는 장년층이 듣는 방송이라 내내 잔잔하다. 익숙해진 후 어느 날 심야의 조용한 분위기를 잠깐 환기시켜 볼까 싶어 우연히 성대모사를 한 번 했다. 비슷하지는 않아도 재미는 있었던 모양이다. 의외로 제작진이 호응해 성대모사가 코너 속 코너가 됐다.

처음에는 성대모사가 어렵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남에게 재미를 줄 일이 종종 생기고, 그럴 때를 위해 준비해둔 성대모사도 있었다. 배우 최불암의 목소리나 가수 나훈아의 꺾는 창법 같은 것. 내 성격과 잘 맞는지 성대모사 연습도 할 만했다. 2주에 한 번씩 성대모사 할 만한 사람을 찾아서 약간의 연습을 하고, 라디오에서 약 10초간 보여드리고, 그게 뭐가 비슷하냐는 면박을 듣는 콩트 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성대모사는 권하고 싶을 만큼 좋은 관찰과 표현 훈련이기도 하다. 성대모사의 두 가지 전제가 습관과 증폭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말버릇, 말투, 발음, 몸짓 등 자신만의 지문 같은 발화 습관이 있다. 코가 큰 사람의 코를 과장해서 그리는 만화처럼, 그 습관을 찾아내 조금 부풀려 표현하는 게 성대모사다. 도드라지는 특징을 찾아낸다. 남이 알 수 있도록 표현한다. 평소 내 직업인 원고 제작과 큰 차이가 없다. 성대모사와 내 일에 의외로 비슷한 면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성대모사를 하다 보니 기술보다 더 큰 전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누구의 성대모사를 하는지 사람이 알아야 재미가 나온다. 내가 누군가를 아무리 잘 따라 해도 그게 누구인지 상대방이 모르면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나는 잡지 에디터이던 시절 내가 모시던 역대 편집장의 성대모사에 자신 있다. 그 편집장을 알던 동료들은 내 성대모사를 재미있어했다. 그러나 당사자를 모를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모두 아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 성대모사용 유명인으로 대표되는 메가트렌드의 시대는 끝났다. 내 세대나 내 관심 분야의 유명인은 장년층 청취자들이 전혀 모른다. 반대도 같다. 10대, 30대, 60대, 남성, 여성, 아니면 이런 틀로 가를 수 없을 만큼 트렌드가 이미 세분화됐다. 소수의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뿌려지던 때와는 다르다. 예전 차트 1위곡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의 차트 1위곡을 찾아 듣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세대를 넘어 재미를 줄 성대모사 대상도 없다. 그래서 작년 연말에 성대모사 코너를 접자고 말씀드렸다.

여전히 성대모사가 가능한 유명인 직군이 딱 하나 남아 있다. 미디어 노출이 굉장히 많고, 전 국민에게 인지도가 있으며, 이들의 말투나 언어 습관이 대량으로 노출되는 사람들. 정치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인은 여러 이유로 정파를 떠나 농담의 소재라기보다는 말다툼 소재가 된 것 같고, 나는 말다툼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사실 나는 한 유명 정치인의 성대모사에 능하지만 이런 이유로 친한 친구들에게만 몰래 보여준다. 그때마다 성대모사의 시대가 지났음을 실감한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