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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정임수]나랏빚으로 판돈 키우는 대선 포퓰리즘 경쟁

입력 2021-12-14 03:00업데이트 2021-12-1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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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25조→50조→100조 원. 여야 대선후보 캠프가 내세운 ‘코로나19 피해 지원금’이 도박판 판돈처럼 ‘묻고 더블로’ 불어난 건 순식간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5조 원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꺼내들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소상공인·자영업자 50조 원 지원으로 맞불을 놨다. 지난주엔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느닷없이 “집권하면 10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판을 키웠다. 그러자 이 후보는 임시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처리해 “당장 100조 원을 지원하자”고 한발 더 나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생계를 위협받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위중증 환자 급증에 정부가 ‘특단의 조치’까지 언급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보상 없이 자영업의 희생을 더는 강요하기 힘들다. 하지만 피해 실태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무엇보다 뚜렷한 재원 조달 방안도 없이 100조 원을 얘기하는 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영업자 표심을 노린 정치적 계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00조 원은 사상 최대인 내년도 예산(607조 원)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내년 국방 예산(54조 원)의 2배, 보건·복지·고용 예산(217조 원)의 절반에 이른다. 5000만 국민이 1인당 200만 원씩을 부담해야 마련할 수 있다.

야당은 각 부처 예산을 5∼10% 줄이고 이게 모자라면 국채를 발행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쥐어짜도 씀씀이가 정해진 부처 예산을 그만큼 줄이는 건 쉽지 않다. ‘예산통’이자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는 “재정의 1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집행 대상이 결정된 예산을 삭감하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국민이 생길 수도 있다.

여당은 추경을 요구하지만 내년 초슈퍼 예산이 열흘 전 국회를 통과해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다. 내년 예산이 1원도 집행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추경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여기에다 윤 후보 측도 집권당 후보가 대통령과 정부를 설득하면 추경 협의에 나서겠다고 한다. 그동안 여권의 ‘추경 중독’을 비판하더니 이제는 이에 편승하는 모양새다.

100조 원 지원을 실행하려면 남은 선택지는 수십조 원의 국채를 발행해 나랏빚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2017년 660조 원이던 나랏빚이 5년 만인 내년에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돌파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된다. 향후 5년간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35개 선진국 중 가장 빠를 거라는 국제통화기금(IMF) 전망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나랏빚을 판돈 삼은 정치권의 돈 풀기 경쟁에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여야가 진심으로 자영업자를 걱정한다면 국회가 통과시켜 10월 첫발을 뗀 소상공인지원법부터 손봐야 한다. 보상액을 현실화하고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지만 국회는 내년 예산에 고작 2조2000억 원을 반영했다. 이래놓고 100조 원을 지원하겠다는 건 정치적 수사(修辭)로 자영업자를 희망 고문하는 일이다. 국민들은 아니면 말고 식의 선심성 공약 대신 실현 가능한 대책을 원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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