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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아름답고 가혹한 동화[클래식의 품격/인아영의 책갈피]

인아영 문학평론가
입력 2021-11-30 03:00업데이트 2021-11-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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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영 문학평론가
예술가에게는 시대, 사조, 대표작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덧붙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체 작품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골목에서건 의외의 면모를 분명히 마주치게 된다. 그 입체적인 상을 더듬어가는 일은 작품 감상에서 뜻밖의 즐거움이 되곤 한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19세기 영국 문단의 총아가 되었던 오스카 와일드(1854∼1900)도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예술과 언어의 아름다움에 심취한 탐미주의 기수이자 풍기문란죄로 복역했던 기구한 삶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와일드의 이름을 처음으로 널리 알린 작품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집 ‘행복한 왕자 및 그 밖의 이야기들(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1888년)’이다. 소설뿐 아니라 시, 희곡, 평론, 에세이 등 여러 장르의 글을 써왔던 와일드의 작품 세계에서 동화는 의외로 핵심이다. 어린이만을 독자로 상정한 작품은 아닌데, 작가 자신이 “아이들과, 아이 같은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건네는 교훈이라기에 이 동화집에는 섬뜩한 구석이 있다. 여기에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happily ever after)’가 없다. 착한 행동을 해야 좋은 결과가 돌아온다는 인과응보의 법칙도 없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가진 것을 베풀고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가혹한 죽음과 끔찍한 비극이 닥쳐온다.

어린 시절 한 번쯤 읽어 봤을 ‘행복한 왕자’의 주인공도 그렇다. 온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광장에서 금빛 조각상이 된 왕자는 굶주리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몸에 박힌 루비, 사파이어, 순금을 나누어주지만 결국 눈이 오는 겨울날 심장이 둘로 쪼개지고 흉한 꼴이 되어 폐기되고 만다. 한편 ‘나이팅게일과 장미’에서 작은 새 ‘나이팅게일’은 한 소녀를 사랑하는 소년에게 선물해줄 붉은 장미를 피워 내기 위해 장미나무 가시에 가슴을 박고 죽을 때까지 노래하고, ‘헌신적인 친구’에서 가난한 한스는 허울 좋은 우정을 생색내면서 무리한 부탁을 일삼는 밀러 대신 그의 아픈 아들을 진료할 의사를 부르러 가는 길에 늪에 빠져 죽는다.

사랑, 아름다움, 선을 추구하면 할수록 맥없이 희생당하고 마는 이 동화에는 어떤 교훈이 있을까. 누군가는 기독교적인 희생정신을, 누군가는 재치 있는 냉소를, 또 다른 누군가는 순도 높은 비극의 미학을 읽어낼 것이다. 이 동화집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나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와 같은 오스카 와일드 대표작에서 엿보이는 탐미주의와 정 반대편에 놓여 있을까, 아니면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을까. 이 해석의 미로는 우리를 풍성하게 한다. 책 속의 말대로 교훈적인 이야기를 듣는 일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그 교훈을 해석하는 일은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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