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대장동보다 위험한 ‘기본소득’ 공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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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에 흔들리는 치적 마케팅
경제 재앙 부를 공약도 경계해야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하나의 주장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 교묘하게 다른 주장으로 넘어갔다.” “그는 언제든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비전을 믿도록 많은 사람을 기만할 수 있었다.” 최근 10주기를 맞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옛 동료들은 독선적 성격의 잡스와 대화할 때 현실이 묘하게 뒤틀리는 경험을 했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공상과학 영화 ‘스타트렉’에서 외계인이 정신력으로 만든 가상공간에 빗대 이 현상을 ‘현실 왜곡장’이라 불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한국 정치판에서 드물게 자신의 ‘치적’과 고유 브랜드 정책을 세일즈하는 정치인이다. 국민 세금에서 지원금을 나눠줘도 꼭 ‘경기도 기본소득’으로 이름 붙이고, 국민은 별 관심도 없는 계곡 정비사업 ‘원조’ 자리를 놓고 같은 당 소속 하위 지자체장과 신경전을 벌이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성과, 정책 마케팅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그이기에 최대 치적으로 자랑하던 대장동 개발에서 터진 비리 의혹은 참기 힘든 일일 것이다. 곧바로 “단군 이래 최대규모 공익환수 사업” “사과할 일이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라고 맞받아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본인 입에서 나온 “(대장동 사업은) 내가 설계한 것”이란 말 때문에 공격받자 “노벨이 화약 발명 설계를 했다고 해서 알카에다의 9·11테러를 설계한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이상야릇한 논리도 폈다. 납치한 항공기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들이받아 무너뜨린 9·11테러 비유를 굳이 들어야 한다면 노벨이 아니라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가 맞겠지만 열혈 지지자들로 둘러싸인 이재명식 현실왜곡장 안에서 그런 건 별문제가 안 된다. 그렇다 해도 10여 년간 손발을 맞춘 ‘측근 아닌 측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가 700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등 상황은 녹록지 않다.

다만 지난 주말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 후보와 관련한 국민의 관심이 온통 대장동에만 쏠리는 건 문제가 있다. 그는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다른 나라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하지 못할 이유는 될 수 없다”며 ‘기본소득’ 공약 추진 의지를 확인했다. 기본소득은 천문학적 비용이 들지만 효과가 불투명해 세계 어느 나라도 도입하지 않은 정책이다. 1000조 원 넘는 나랏빚을 물려받을 차기 정부가 한국을 초유의 기본소득 실험장으로 만드는 건 국가적 경제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위 10%에게 국토보유세를 걷어 재원을 만들면 된다면서 조세저항은 염두에도 없다. 과일가게에서 주인이 권한 수박을 사왔는데 속이 곯았다면 같이 사온 복숭아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게 정상이다. 대장동 개발이 불량품으로 판명 난다면 기본소득 등 이재명 브랜드 공약들에 문제가 없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서민을 살린다는 ‘소득주도 성장’이 저소득층 일자리를 없애고, “부동산만은 자신 있다”는 정부에서 집값이 갑절로 뛰고, 세계가 칭찬한다는 ‘K방역’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쓰러지는 뒤틀린 현실을 우리는 4년 반 가까이 경험했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란 한 명의 공직자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드리겠다”고 힘줘 강조하지 않아도 한 명의 대통령이 얼마든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국민은 너무 잘 안다.

수천억 원이 아이들 용돈처럼 오간 대형 비리 사건을 눈앞에 두고도 ‘성공한 민관개발’이라고 계속 우기는 정치인을 국민은 신뢰하기 어렵다. 대장동 사건은 이 후보의 성과와 공약들의 겉포장을 뜯어내고 냉정하게 내용물을 살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대장동#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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