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자료 부족’은 핑계, 맞춤지원 얼마든 가능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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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산업1부 차장
이상훈 산업1부 차장
추석이 다가오면 주요 대기업들은 ‘협력사 납품대금 조기 지급’ ‘농수산물 구입 지원’ 등에 나선다고 발표한다. 일반 독자들은 체감하기 어려운 기사이지만 현금이 아쉬운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다. 협력사가 받은 대금은 또 다른 거래처의 결제대금, 명절 상여금이 되고 전통시장, 슈퍼마켓, 동네 식당, 호프집, 커피숍의 매출로 이어진다.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대기업들의 조기 지급은 바뀌지 않았지만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자영업자들은 66조 원이 넘는 빚을 떠안으며 45만3000개의 매장이 폐업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모인 메신저 채팅방 프로필의 검은 리본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본보가 최근 한국경제연구원과 함께 국세통계를 분석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 숙박, 서비스 등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은 9개 업종의 지난해 매출 감소 피해가 11조 원에 달했다. 숙박업(―12.8%), 소매업(―9.4%), 서비스업(―8.5%) 등 사회적 거리 두기로 영업 제한을 받은 사업장이 몰린 업종에서 매출 감소 폭이 컸다. 대표적 자영업 업종인 음식업에서만 지난해 매출 감소액이 6조326억 원이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피해는 도심지, 대학가, 주택가 골목상권 어디도 비켜가지 않았다.

엄청난 기밀 자료를 분석한 게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개인사업자 608만1321명이 국세청에 신고한 자료로 작성한 정부 통계다. 정부는 공개 자료 이상으로 훨씬 정밀한 자료를 갖고 있다. 개인사업자 한 명 한 명의 매출이 얼마나 줄었는지, 부가가치세 신고 납부액이 얼마나 감소했는지 1원 단위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요즘은 매출의 90% 이상이 신용카드, 현금영수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정확성은 담보할 수 있다. 코로나19 유행이 1년 반 이상 길어지면서 연간 단위의 국세통계에도 팬데믹의 생채기는 뚜렷이 남았다.

세금을 거두려 이처럼 정확한 숫자를 쥐고 있으면서 정부 여당은 정작 코로나19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활용하지 않고 있다. 여당은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 논란이 불거지자 “불만 없게 모두에게 다 주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기획재정부는 “건강보험료만 한 정확한 지표가 없다”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매출이 감소한 자영업자와 강제 영업시간 단축 등에 힘들어하는 사업장을 선별해 낼 수 있는데도 재정당국과 여당은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다.

‘국민들이 반발하니’ ‘자료가 부족해서’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자영업자 선별 지원이 어렵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재난지원금, 국민지원금은 정부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영업을 제한당한 사업자의 피해 보상에 맞춤형으로 쓰여야 한다. ‘돌고 돌면 언젠간 자영업자들에게 흘러갈 것’이라며 코로나19 확산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전 국민에게 살포하는 방식으로 지급하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


#자료 부족#핑계#맞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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