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화증 분석법”[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21-08-18 03:00수정 2021-08-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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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작화증’은 원래 의학용어입니다. “자기의 공상을 실제의 일처럼 말하면서 자신은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병적인 증상”입니다. 뇌 병변 같은 의학적 원인이 있으면 기억장애가 생기고 기억의 빈틈을 메우려고 전혀 없었던 일을 새로 만들어 내거나, 있었던 일을 비틀어서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 버립니다. 작화증은 교묘해서 경험이 많지 않은 의사는 때로 환자가 하는 이야기를 자신도 모르게 사실로 받아들이는 잘못을 범합니다.

좁게 보면 작화증은 질병이나 넓게는 소위 정상인에게도 적용되며 생각보다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자화자찬(自畵自讚) 같은 가벼운 형태부터 엄청난 가짜 뉴스까지 다양합니다. 요즘 세상에선 이야기가 넘쳐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입니다. 그중에는 꼭 하고 들어야 할 이야기도 있지만 악의적 의도로 만든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적어도 내년 대선까지는 개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또는 집단 목표를 이루려고 쏟아내는 이야기의 홍수에 시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에게 맡겨 해결할 의학적 작화증과 달리 사회적, 정치적 작화증은 국민 모두의 심리적 부담으로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논리적 분석력을 갖추지 않으면 조직적이고 조작적인 행위의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대비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의학적 작화증(이하 병)과 기획적 작화증(이하 기획)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첫째, 의도가 숨어 있는지 없는지 자세히 분석해야 합니다. 병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말하는 본인조차도 그것이 왜곡되고 과장되어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기획이 생산한 이야기에는 말한 사람이 챙기려는 이득이나 목표가 담겨 있습니다. 둘째, 병이 만드는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 줄어듭니다. 뇌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능이 점점 쇠퇴하기 때문입니다. 기획은 오히려 탄력을 받으면서 집요하고 일관성 있게 지속됩니다. 그러니 듣는 사람의 부담은 확 늘어납니다. 셋째, 병은 기억 결손을 메우려고 시도한 피동적 결과입니다. 기획은 기억을 조작하고 왜곡해 듣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려는 능동적 노력의 산물입니다. 넷째, 병은 죄가 아니고 치료하고 도울 상대입니다. 기획은 범죄로 이어지기 전에 예방하고 처리해야 할 대상입니다. 다섯째, 병은 논리 기능이 쇠약해지면서 나타납니다. 기획은 이성과 논리를 거부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시작합니다. 여섯째, 병은 자아의 입장과 무관한 나에게 국한된 증상입니다. 기획은 자신의 자아와 음습하게 공모해 외부를 통제하려는, 세상의 눈치를 살피면서 현실을 덮으려는 겁니다. 일곱째, 가장 중요한 차이입니다. 병은 각종 검사에서 입증된 객관적인 근거에 따라 치료합니다. 기획은 추정이 지배하는 영역이어서 오염을 예방하면서 제거해야 할 대상입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득이 통하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특히 소리 높여 말하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병은 의사가 환자를 사려 깊게 대하면서 돕고 치료하면 됩니다. 기획은, 특히 SNS 등 전달 매체가 발달한 이 시대에는, 듣는 사람의 한계와 지속 시간을 정할 수 없을 정도로 파급력과 영향력이 큽니다. 21세기는 개개인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서 관점을 확신하는 성향이 충만한 시대여서 양상이 더욱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대중이 표현하는 다양한 태도를 간추리면 다음 세 가지 집단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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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기획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도 모두 미신적으로 행동합니다. 미신은 병의 사촌 격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불안감을 통제하려고 작동하는 미신적 성향은 교육, 지식수준과는 그리 관계가 없습니다. 물론 누구나 조금씩 미신적으로 행동하는 면이 있지만 정도의 문제입니다. 둘째, 기획을 반은 믿고 반은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모르는 것을 알고 싶다는 의미에서 믿고, 동시에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의심도 하지만 거기에서 끝납니다. 자기 의견은 없습니다. 셋째, 모르면 모르는 것이고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는 안 믿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입니다. 분석력을 기르면서 비평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합니다.

의학적 작화증은 병이 만든 기억의 틈을 메우려는 애처로운 증상입니다. 이에 반해 기획적 작화증은 논리와 이성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빈 곳을 무리해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메우려다가 과장과 궤변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야기를 꾸며서 말하는 사람과 이를 듣고 열성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보다는 작화적 사고방식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작화적 사고방식에는 미신적인 생각도 포함됩니다. 결론적으로, 아는 것보다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더 많이 말하면 작화증이 됩니다. 그러니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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