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의 뿌리는 정신분석학?”[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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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나가면 너무 덥습니다. 마스크 쓰고 간격도 지켜야 하고. 주로 집 안에서 자료를 찾고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합니다. 온라인 검색은 축복입니다. 가끔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납니다. 어려서 마음에 드는 예쁜 조약돌을 강변에서 찾았던 것 같은 즐거움을 느낍니다.

‘홍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미국인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미국 뉴욕시에서 성장한 에드워드 버네이즈입니다. 홍보업을 개척하면서 유명해지고 부자가 됐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아메리칸 드림으로 들립니다.

버네이즈는 미국식 발음이고 독일어 발음은 베르나이스입니다. 어쩐지 친근하게 들립니다. 마르타 베르나이스에 대해 알고 있으니 혹시 친척? 맞습니다. 마르타는 지크문트 프로이트 박사의 부인이고, 에드워드의 아빠가 마르타의 오빠, 엄마가 프로이트의 여동생입니다. 그에게 프로이트는 고모부이자 외삼촌이 됩니다. 드물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정신분석학 창시자의 조카가 ‘홍보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즈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시작은 미미했습니다. 조카가 아저씨에게 고급 시가 한 통을 선물했고 답례로 정신분석학 입문서를 받습니다. 그 책을 읽고 감동한 조카는 무릎을 탁 칩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것이 비합리성이라니! 깨달음을 홍보 실무에 맞춰 보려고 애씁니다.

담배 소비량을 늘릴 방법을 찾아달라는 회사의 부탁에 에드워드는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당시 금지됐던 여성의 공공장소 흡연에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다면? 사회적 관습을 깨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정신분석가를 찾아가서 묻습니다. 시가가 여성의 상징이 될 수 있나요? 남성의 상징을 감히? 돌아와서 고민합니다. 여성이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것이 남성의 힘에 대항해 여권을 찾는 도전이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면?

패션 잡지 여성 모델들을 기용해 ‘자유의 횃불’이라는 이름으로 1929년 3월 뉴욕시 5번가에서 개최한 ‘여성 흡연 행사’는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크게 성공합니다. 정신분석학 이론을 빌려와 대중의 마음을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그 행사 하나로 여성 인권이 신장된 것은 아니나 익숙함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면전에 갑자기 낯선 광경을 제시해 상당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여성 운동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에드워드는 미국인이 아침 식단을 베이컨과 달걀로 바꾸도록 의사들이 권장하게 만들어 베이컨 판매량을 늘리기도 했습니다.

에드워드의 시대인 20세기 초반에 비해 21세기 우리는 엄청난 양의 홍보와 광고 그리고 선전과 선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홍보와 광고는 이미 일상이며 ‘선전’도 교묘하게 스며듭니다. 기독교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낀 가톨릭 포교 사업이 그 기원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선전과 선동의 구분이 모호합니다. 변질을 거쳐 거짓말, 과장, 왜곡이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홍보, 광고, 선전, 선동 모두 물건이나 문제를 듣고 보는 사람들의 감정과 교묘하게 엮어 조정하고 조작해 비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유도합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누구나 선전·선동의 목표물이 돼 마음, 판단, 행동이 종속되며 자유를 잃습니다.

선동을 쉽게 대하면 안 됩니다. 보통 설득만 당하지 않으면 된다고 다짐합니다만 짐작과 달리 선동의 목표가 반드시 설득이 아니라면? 널리 퍼뜨리려는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선동의 주체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선동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을 분열시켜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효과가 있으려면 집요하게 되풀이해야 함도 미리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도 결코 말을 바꾸지 않고 핑계를 대면서 벗어나려 합니다.

전문가급 선동꾼들은 이야기의 신뢰도를 높여 의도하는 효과를 높이려고 가끔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도 활용합니다.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한다는 의도입니다.

프로이트는 미국에 있는 조카의 일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미국과 미국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유럽인 프로이트는 조카의 일이 다분히 미국적이라고 여겼습니다. 빈의 경제가 안 좋았을 때 조카의 도움을 받았지만, 대중이 읽을 글을 쓰면 정신분석학을 널리 홍보할 수 있다는 제안은 거절했습니다. 박사는 홍보, 광고, 선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조카가 하는 일의 내용을 자세히 알았다면 자신이 창시한 정신분석학이 엉뚱하게, 때로는 조작을 목적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좌절하고 분노했을 수도 있습니다.

홍보, 광고, 선전, 선동에 싸여 있으면 세상이 돌아가는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정보 전달 공간이 확장되고 관련 기술도 고도화된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더 취약합니다. 선동에 넘어가면 마음을 잃거나 몸이 상합니다. 속지 않으려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인간을 지배하는 무의식이 원천적으로 비합리적, 비논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홍보#뿌리#정신분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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