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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정임수]현실성도, 디테일도 없는 與 대선주자 부동산 공약

입력 2021-08-10 03:00업데이트 2021-08-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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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차장
‘반값 아파트’의 원조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다. 그는 1992년 통일국민당 대선 후보로 나서 경부고속도로 2층 건설과 함께 반값 아파트 공급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논란을 빚었던 반값 아파트는 이제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30년 묵은 단골 메뉴가 됐다.

이번에도 여당 대선주자들이 파격적인 부동산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유권자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현안일 뿐 아니라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지금과 다른 방향의 공약을 내놓는 게 상식이지만 여당 주자들은 오히려 반(反)시장적 기조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정부미(米)처럼 정부가 주택을 사들였다 팔았다 하면서 집값을 조절하겠다는 주택관리매입공사 설립이나 일정 규모 이상의 택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토지공개념 3법이 대표적이다. 최근 발표된 주택공급 공약도 다르지 않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주택 100만 채를 포함해 임기 내 주택 250만 채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역세권 등 좋은 위치에 무주택자들이 건설원가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30년 이상 살 수 있는 공공주택을 짓는 게 기본주택이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3만 채 규모의 스마트시티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50년 모기지와 20∼30년 장기전세 등으로 청년·신혼부부와 40대 무주택자를 위한 아파트도 짓겠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공공임대 100만 채와 반값 이하 공공분양 아파트 30만 채 공급을 약속했다.

여권 주자 모두 엄청난 규모의 주택 공급을 강조하면서 공공 부문의 역할은 현 정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강화한 셈이다. 하지만 공약 실현을 위한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부지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이재명표 기본주택은 이 지사 말대로 채당 건설비를 3억 원으로만 잡아도 300조 원이 든다. 임기 내 250만 채 공급도 허황된 계획이라는 평가가 많다. 노태우 정부도 분당 일산 평촌 등 1기 수도권 신도시를 지어 집값을 안정시켰지만 대선 공약인 200만 채 공급은 채우지 못했다.

서울공항을 활용한다는 구상도 군사·안보 문제가 얽혀 있어 쉽지 않다. 2000년대 초반부터 수도권 가용택지 확보를 위해 공항 이전 방안이 꾸준히 거론됐지만 국방부 반대와 이전 비용 등의 문제로 번번이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8·4대책에서 발표한 13만 채 공급조차 1년째 헛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태릉골프장과 정부과천청사 개발은 지자체와 주민 반발에 제동이 걸렸고 민간을 배제한 공공재건축은 목표치의 고작 3%만 진전됐다. 공공 개입 강도를 더 높인 올 2·4공급대책은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여당 대선주자들이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현 정부가 고집한 ‘공공 만능주의’ 정책을 답습한다면 주택시장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파격적인 주택공급 방안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면 국민을 기만하는 공약(空約)일 뿐이다. 누가 뜬구름 잡는 대책을 내놓는지 가려내는 건 이제 유권자의 몫이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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