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우열]‘바지’ ‘쥴리’ 판치는 대선, 국민 삶 뒷전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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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열 정치부 차장
최우열 정치부 차장
2018년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과 맞붙을 뻔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네거티브 전략의 일환으로 일찌감치 이재명 대항마로 최중경 카드를 검토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경기도지사 선거는 ‘경기의 자존심’(최중경) 대 ‘경기의 잡놈’(이재명)의 대결 구도로 가야 이긴다”며 프레임을 짜고 들어갔다. 경제 관료 출신의 국제금융 전문가라는 압도적 스펙, 이미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쳐 별로 털어낼 것 없는 사생활의 최중경이라면 ‘형수 쌍욕’ ‘여배우 스캔들’을 달고 다닌 이재명을 검증 이슈만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혼과 아들 문제 등 각종 사생활 스캔들이 많았던 현역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바른정당을 탈당해 복당하자 스텝이 꼬였다. 최중경 남경필 두 사람의 담판으로 남경필이 당 후보가 된 뒤, 한국당은 마지막 네거티브 카드로 뒤집기를 시도했다. 선거 불과 열흘 전 당 공식 홈페이지에 이재명의 ‘형수 쌍욕’ 음성 파일을 전격 게재한 것. 논란이 들끓는 와중에 치러진 선거 결과는 이재명 56.4%, 남경필 35.5%였다.

‘김대업 공작’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국민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서 그렇지, 2018년 형수 쌍욕 음성 파일 논란처럼 네거티브 이슈가 선거 결과를 뒤집은 경우는 많지 않다. 당시엔 기본소득 개념을 누구보다 먼저 들고 나온 이재명의 비전과 탄핵 여진인 보수야당 심판 바람이 네거티브를 이겼다. 2008년 대선에선 이명박의 ‘경제 대통령’ ‘강한 나라’ 같은 단순 명료한 비전과 노무현 심판 바람이 겹치면서 극심했던 BBK 네거티브를 압도했다.

대선이 8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재명의 여배우 스캔들, 윤석열의 ‘X파일’ 의혹 등 네거티브 이슈로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물론, 사실에 입각한 후보 검증은 언론이나 경쟁 후보들의 임무이고, 당사자는 이를 해명해 국민의 의문을 풀어주는 게 선거의 한 과정이다.

하지만 구태 정치의 모습들이 스멀스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치밀한 검증을 거친 팩트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묵은 의혹들을 재탕 삼탕 떠들어대는 후보도 나오고, 밑도 끝도 없이 “X파일 내용을 보니 위험해 보이더라”며 애매한 위기감을 조성하는 행위도 이어진다.

문제는 ‘닥치고 네거티브’ 공세가 대선 판의 주연이 돼버리면 각 후보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같은 중요한 이슈는 묻히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TV토론을 수차례나 했고 야권 대선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도, 이재명의 공약이나 윤석열표 정책이 딱히 쟁점이 된 적도 없다. 시중에선 “머리에 남은 건 ‘바지’와 ‘쥴리’뿐”이라는 말만 나돈다.

대선 후보들이나 정당은 타율 낮은 김대업식 요행을 바랄 게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 세상에 대한 비전을 어떻게 돌풍으로 증폭시킬지 치열한 궁리를 더 해야 한다. 그게 ‘바지’나 ‘쥴리’보다 내 삶이 어떻게 바뀔지에 더 관심이 많은 국민의 선택을 받는 길이다.



최우열 정치부 차장 dnsp@donga.com
#바지#쥴리#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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