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과감한 인프라 투자 없이 탄소중립 미래는 없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입력 2021-06-03 03:00수정 2021-06-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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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산업1부 차장
지금 당장 사겠다고 계약을 해도 올해 안에 가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제품이 있다. 전기차 얘기다. 소음은 작고 매연은 없는 데다 디자인까지 세련됐다. “출고 시기가 늦어지는 전기차 대신 우리 회사 다른 차를 사면 100만 원을 깎아주겠다”는 프로모션까지 등장했지만 ‘그래도 전기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장점이 많은 전기차이지만 아직 큰 단점이 있다. 충전이다. 공영주차장, 공공기관 등에 보급된 전기차 충전기는 잦은 고장에 코로나19 방역 등을 이유로 사용할 수 없는 곳이 의외로 많다. 완속충전기는 충전에 몇 시간씩 걸려 먼저 온 운전자가 있으면 허탕을 치기 일쑤다. 인적 드문 곳에 있는 충전기는 거미줄이 쳐져 있거나 악취가 진동할 정도로 관리가 허술하다.

국내 전기차 공용 충전기는 6만4000기. 충전기 1기당 전기차 비율이 2.2대 수준이다. 언뜻 많아 보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관리가 소홀하거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충전기 등을 감안하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수소충전소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서울에 고작 4곳으로 경쟁 도시 도쿄(21곳)의 5분의 1 수준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강한 호기심과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수준으로 주목받아온 ‘글로벌 테스트베드’로서 한국의 위상은 탄소중립 분야에선 힘을 쓰지 못한다.

정부가 그린뉴딜을 국책사업으로 내세우며 적극 홍보하고 있지만 탄소중립 분야에서 가장 우리에게 친숙한 전기·수소차조차 인프라 현실은 아직 이 정도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점진적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지만, 치고 나가는 경쟁국을 앞선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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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기업들이 전기차 개발과 수소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으려면 정부의 발 빠른 투자가 절실하다. 미국은 전기차 시장 인프라 구축에만 1740억 달러(약 193조 원)를 투입하기로 했고 일본은 전국에 146곳의 수소 스테이션을 이미 설치했다. 무역 상대국 간 차별 금지 원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국과 중국은 자국산 전기차에 인센티브를 주면서 친환경차 보급에 다걸기하고 있다.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막대한 자동차 산업에서 뒤처지면 글로벌 산업 패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꾼 새로운 산업 문명은 미래를 예측하고 과감히 인프라에 투자한 노력으로 열매를 맺어 왔다. 산업혁명 시대 유럽의 철도가 그랬고 고도성장기 한국의 고속도로 건설과 철강산업이 그랬다. 초고속 유·무선 인터넷망에 이뤄진 대규모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IT 강국 코리아’는 꿈도 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탄소중립 투자가 나눠 먹기 식 소모성 예산 집행이 돼선 곤란하다. 탈원전 정책처럼 애써 구축한 인프라를 허무는 식이어서도 안 된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인프라 구축과 국가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로 추진돼야 한다. 판이 제대로 깔린 기회 앞에서 엉뚱한 방향의 투자로 시간을 낭비했다간 금세 뒤처질 수 있다. 경쟁국과 같은 출발선에서 뛸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
#인프라 투자#탄소중립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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