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방치된 철도부지, 사업성 높여 해법 찾다[광화문에서/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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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김유영 산업2부 차장
미국 뉴욕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변 인근. 계단 2500개가 나선형으로 벌집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방문객들은 이 15층짜리 건물 계단을 탐험하듯 오르면서 강변을 바라보기도 하고 건물 내부도 감상할 수 있다. 수많은 계단들이 식물의 가느다란 물관처럼 뻗어 있다 해서 베슬(vesse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변에는 100층 넘는 초고층 빌딩을 포함한 빌딩 10개가 들어섰다. 사무실과 호텔, 쇼핑몰, 아파트까지 고루 있어서 ‘도시 속의 도시’로 꼽힌다.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았다고 평가받는 허드슨 야드(Hudson Yards) 프로젝트다. 허드슨 야드는 미국 부동산 개발업체인 릴레이티드가 250억 달러(약 28조 원)를 투입해 개발한, 미국 역대 최대 개발 사업으로 꼽힌다.

당초 이곳은 낙후된 철로 부지가 있어서 골칫덩이였다. 1950년대부터 개발이 추진됐지만 번번이 좌초됐다. 그러다가 2010년 뉴욕시장이었던 마이클 블룸버그가 적극적으로 개발을 추진했다.

반세기 넘게 지지부진했던 사업을 현실화하기까지는 과감한 세제 혜택이 한몫했다. 민간개발업체에 세금 대신 세금보다 낮은 부담금을 부과한 것. 개발업체 입장에서는 어차피 세금을 내야 했는데, 기존에 내야 했던 세금보다 적은 금액을 내니 세제 감면 혜택을 받은 셈이다. 사업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사업성이 높아지니 개발업체도 기꺼이 사업에 참여했다.

뉴욕시가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물론 뉴욕시 산하의 공공기관인 ‘허드슨야드기반시설개발공사’도 개발에 참여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업성이 우선이었던 만큼 개발업체에 별도의 부담을 지우지 않았다. 공사는 예산과 자금 조달, 비용 절감을 맡았다. 개발업체에서 받은 비용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했고 이를 사업 재원으로 보탰다. 공원을 조성하고 도로를 닦았으며 채권 원금과 이자를 상환했다. 개발업체도 우리 돈으로 7조 원 안팎을 감면받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건물이 엄밀히는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건설된 것이다. 뉴욕시는 철도역을 그대로 남겨둬야 해서 철도 차량기지를 계속 운영했다. 첨단 건설 공법을 바탕으로 기지 위에 덮개를 설치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땅값이 부담이고 주택을 새로 지을 곳이 마땅치 않은 서울에서 이런 구상이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매혹적으로 들렸을 것 같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도심개발방식으로 허드슨 야드를 언급했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들 역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철로 위 주택’, ‘도로 위 주택’ 등을 지어서 공급을 늘리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걸고 있기도 하다.

노후된 지역을 개발하고 부족한 주택을 늘려보겠다는 구상은 좋지만 어디까지나 돈이 문제고 사업성이 문제다. 정부가 개발이익을 철저하게 환수하는 기존 철학을 바꿀 가능성이 당장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들이 뉴욕시처럼 민간 참여를 실질적으로 유도하는 철학까지 같이할지는 의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철로든 도로든 그 위에 어떤 건물을 올린다 해도, 그 구상은 신기루에 그칠 수 있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철도부지#미국 뉴욕#베슬#허드슨 야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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