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너의 숨만큼만[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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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작가
고수리 작가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엄마는 해녀입니다’ 중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 숨 멈추기. 삶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 나는 숨을 멈춰본다. 1분. 겨우 1분을 채 견디기가 힘들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럽고 식은땀이 솟는다. 숨을 멈춘 1분이 얼마나 길고 간절한 시간인지 실감하게 된다. 숨은 내쉬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들이쉬는 것부터 시작하면 숨이 엉켜버리고 마니까.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에서 해녀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이런 당부를 전한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나의 외할머니도 해녀였다. 예순다섯 해까지 날마다 바다에 나갔던 할머니는 숨을 기준으로 살았다. 바다 깊은 곳에는 전복이며 소라며 크고 탐스러운 것들이 많지만, 더 많이 가져오려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물숨이 들어 생명이 위험해진다. 할머니는 딱 자신의 숨만큼만 있다가 물 위로 올라와 숨비소리를 내쉬었다. 호오이 호오이. 휘파람 같은 그 소리는 위험하지 않도록 천천히 숨을 내쉬는 방법이자 다시 숨을 쉬는 방법이었다. 숨비소리를 내쉴 때마다 할머니는 삶과 죽음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바다로. 평생을 바다에서 숨 쉬며 살았다.

숨을 쉬며 살아있는 힘을 ‘목숨’이라고 한다. 목으로 숨을 쉬느냐 쉬지 못하느냐. 거기서 삶과 죽음이 갈라진다. 죽음을 ‘숨이 멎다’ ‘숨지다’ ‘숨을 거두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숨이야말로 살아있는 힘이기 때문일 것이다. 숨을 멈춰보면 할머니의 삶이 성큼 가까이 느껴진다. 내가 얼마나 숨을 잊은 듯 쓸데없는 것들에 정신이 팔렸는지, 숨이 멎을 듯 과한 욕심을 부렸는지 깨닫는다. 온전히 숨을 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소중하다.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이 한마디를 간직하며, 오늘을 산다.

고수리 작가


#숨#엄마는 해녀입니다#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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