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의 부속품이 만난 변화의 순간[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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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인간은 언제 변하는가

외로운 관료적 기계였던 비즐러는 도청을 통해 그간 자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예술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서서히 변화한다.
외로운 관료적 기계였던 비즐러는 도청을 통해 그간 자신이 상상하지 못했던 예술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서서히 변화한다.
※이 글에는 영화 ‘타인의 삶’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변하는가?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영화 ‘타인의 삶’에 나오는 구 동독의 고위 관료는 말한다. “인간은 변하지 않아.” 인간을 자기 예측대로 통제하고 싶은 사람은 인간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이 변하지 않아야 예측하기 쉽고, 예측하기 쉬워야 통제하기 쉬울 테니까. 두고두고 상대를 미워하고 싶은 사람도 상대가 좋게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상대가 변하지 않아야, 자신의 증오가 계속 정당화될 테니까.

미래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20세기의 사회주의 체제는 국민을 강하게 통제하고 감시하려 들었다. 시장이나 시민사회에 맡길 만한 많은 일들이 관료들의 계획과 통제와 감시에 맡겨졌으니, 그 사회는 관료 중심 사회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원래 사회생활의 각 국면에서 필요한 가면을 쓰곤 하는데, 감시사회에서는 한결 두꺼운 가면 뒤로 숨어 버린다. 무슨 꼬투리를 잡힐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감시를 강화할수록 상대를 더 알 수 없게 되는 아이러니가 감시사회에 있다.

구 동독의 정보기관 슈타지는 좀 더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서 아예 도청을 시도한다. 그 누구보다도 관료적인 비밀경찰 비즐러가 반체제 성향의 극작가 게오르크 드라이만과 그의 여자친구이자 배우인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의 도청을 맡는다. 비즐러의 이 도청 행위는 생각지 못했던 아이러니를 낳는다. 반체제 인사들이 바뀐 것이 아니라,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던 동독 사회의 완벽한 ‘부속품’인 비즐러가 변해 버린 것이다.

비즐러라는 인간은 어떻게 변할 수 있었나? 외로운 관료적 기계, 비즐러는 도청을 통해 그간 자신이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던 예술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자신이 상상한 예술가들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예술가들의 세계를. 이제 비즐러의 마음에 무엇인가 온다. 이 변화의 순간이란 언제 어떻게 도래하는 것일까. 그 순간이야말로 인간의 통제 영역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변화는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가르친다고 냉큼 오는 것도 아니고, 정부의 계몽 프로그램에 참석한다고 후다닥 오는 것도 아니고, 예술가들의 공연을 감상한다고 반드시 오는 것도 아니다. 어느 의외의 순간, 변화는 일어난다. 비즐러의 경우, 가면을 벗은 예술가들의 모습에 직면했을 때 그 순간이 왔다.

이제 비즐러는 자신이 그간 봉사해온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전복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에 투항하는 것이 아니다. 동독 정권을 전복할 유혈혁명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관료 사회의 한복판을 예술에 공감한 단독자로서 질주하는 것이다. 열정 소나타를 계속 들었으면 혁명을 완수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레닌은 말했지만, 열정 소나타를 듣지 않는 정치는 관료주의로 흐른다. 이제 비즐러는 열정 소나타를 들어버린 사람. 그가 꿈꾸는 사회는, 관료적 명령이 아니라 예술적 소통이 사람들을 나직하게 매개하는 사회이다.

비즐러는 숨은 도청기술자가 아니라 숨은 일상의 ‘예술가’가 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장막 뒤에서 반체제 인사의 탈출과 활동을 돕는다. 그 활동 위로 세월은 흐르고, 마침내 동독 사회주의 체제는 무너진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을 무렵, 극작가 게오르크 드라이만은 자신의 책을 한 번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는 비즐러에게 헌정한다. 길을 걷던 비즐러가 어느 서점으로 들어가 책을 펼치고, 그 나직한 헌사를 확인하는 장면으로 ‘타인의 삶’은 끝난다.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한 주석으로는, 시인 한정원의 ‘시와 산책’ 속 한 구절이 적합하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소극적으로 사귀었고 말없이 헤어졌지만, 나는 이것이 우정이 아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체제#부속품#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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