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부동산 정치가 ‘4류’ 아닌가[오늘과 내일/박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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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에 ‘두더지 잡기’ 규제 반복
공급 외면 ‘외눈박이 대책’ 되풀이

박용 경제부 차장
박용 경제부 차장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저금리에 따른 현상이다. 세금 문제와는 별개다. 정부는 전국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었기 때문에 공급 확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재건축을 규제하면 공급이 억제돼 도리어 값이 오른다.”

서울의 한 민간 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 현장. 연구원 A 씨는 “집값 급등은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등의 시장 외적 요인과 양질의 주거 환경 선호 및 공급 애로 등의 시장 내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원인과 다른 세금 중과, 재건축 규제, 아파트 분양가 규제, 수급 문제를 주거 복지로 연결, 수도권 신도시 개발 규제 등 5가지 오류를 저질렀다는 비판이었다.

그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특징을 ‘수요를 투기세력으로 인식한다’ ‘부동산 이익에 대한 거부감으로 세금을 중과한다’ ‘부동산을 양극화의 시각으로 본다’는 3가지로 요약했다. 통치이념이 분배여서 부동산 정책 기조도 지역 간 계층 간 형평성을 중시하고, 정책 수단도 조세에 의존해 양극화 해소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해법은 이랬다. 먼저 사람들이 원하는 양질의 아파트 공급 확대를 주문했다. 또 탈세와 탈법은 엄격히 막되 ‘징벌적 세금’은 피해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유세를 내려고 집을 팔거나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문제가 아니냐” “미국은 투자는 있지만 탈세는 없는 반면 한국은 투기와 탈세는 있는데 투자는 없다”고 했다. 그는 “시장이 불안하면 비용을 치르는 것은 결국 정부가 아니라 국민, 1주택 아니면 모두 투기라고 하면 누가 임대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부동산이란 ‘역린’을 건드리자 일부 참석자들은 발끈했다. “정부 대책이 최선은 못 돼도 차선은 되지 않느냐” “세금이 너무 올랐다고 하는데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이다. 전남 해남의 집과 서울 강남 집의 재산세가 별로 차이가 없는 게 말이 되나”라는 반박이 나왔다. 누군가는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대책을 내놓았더니 이제는 문제가 많다고 하니 어떡하란 말인가” “언론은 일관성, 합리성 있는 보도를 해왔는가”라며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문재인 정부 4년 차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노무현 정부 4년 차인 2006년 6월 세미나 현장에 대한 취재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14년 전엔 강남 분당 등 일부 지역만 들썩거렸는데 지금은 규제가 없는 곳이라면 지방까지 들썩거린다. 그때는 저금리에 국토균형개발 사업으로 지방에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풀렸는데 지금은 위기 극복을 위해 유동성이 풀린 건 다르다.

하지만 저금리가 문제가 아니라 저금리로 시장에 ‘유동성’이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무모하게 규제와 세금으로 막겠다고 덤빈 게 문제라거나 수요를 잠재울 ‘공급 확대’ 카드를 외면해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비판은 지금도 나온다. 전 정부의 규제 완화, 언론 탓을 하는 건 그때도 그랬다. 14년 전처럼 수요를 투기로 간주하면 살 집이 없어 못 살겠다는 시민에게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동문서답을 할 법도 하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 14년간 같은 논쟁과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시장에서 조용히 도태될 것이다. 과오를 잘 아는 공무원들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파수를 맞추고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 틀어대니 시민들만 죽을 맛이고,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비웃는 게 아닌가. 부동산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지 정쟁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부동산 정치’에 대한 불신이 서서히 바뀔 것이다. 14년 후 취재 수첩을 뒤지며 오늘을 복기하는 일이 다신 없었으면 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부동산 정책#더불어민주당#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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