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 개정, 헌재 선고까지 유보해야[오늘과 내일/정원수]

정원수 사회부장 입력 2020-11-25 03:00수정 2020-11-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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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異見’ 이어 헌재 결정 전에 서두르면
‘정부 여당 입법’ 낙인찍혀 공정성 잃게 될 것
정원수 사회부장
“전날 밤에도 평의를 했다. 신속하게 위헌 여부를 판단하겠다.”

20일 유상범 등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4명이 헌법재판소를 항의 방문해 신속한 선고를 요구하자 헌재 박종문 사무처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헌재는 유 의원이 올 5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 등을 심리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올 10월까지 헌재는 일반 국민이 낸 공수처 관련 헌법소원 청구 17건을 “당사자 자격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모두 각하했다. 하지만 유 의원과 강석진 전 의원 등 야당 국회의원이 제기한 헌법소원 2건은 헌법재판관 9명으로 구성된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심리 중이다.

헌재는 전원재판부 심리를 위해 올 6월부터 이달 7일까지 국무조정실과 법무부 등 관련 기관으로부터 공수처법에 대한 의견을 서류로 제출받았다고 한다. 박 사무처장 말대로라면 관련 기관의 회신과 헌재연구관의 검토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헌법재판관들이 본격적인 평의를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공개 심리여서 정확한 내용은 알기 어렵지만 헌법재판관의 구성상 공수처법의 위헌 여부를 놓고 대립이 큰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헌재 안팎에선 “헌법재판관들이 자주 밤늦게 평의한다. 곧 공개변론 여부를 결정하고, 그 뒤에 선고 일정이 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달 26일 선고 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다음 달 이후 선고 공판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공수처는 행정부 소속인 기존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수사기관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6부 요인, 국회의원, 판사와 검사, 3급 이상 고위공무원 등 7000여 명이 수사 대상이다. 하지만 수사 착수나 진행 상황 등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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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공수처법은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서 공직선거법과 동시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처리되면서 숙의 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어렵다. 본회의장에서 제1야당의 야유와 반대 시위 속에서 강행 처리됐다. 입법부의 재량권을 인정하더라도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조항은 없는지 헌재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여야 하고,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다른 수사기관이 응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헌법 정신과 가치에 부합하는 수사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맞느냐는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헌재가 위헌 판단을 내린다면 독소 조항만 제거하면 된다. 거꾸로 합헌 판단을 내린다면 공수처 출범이 오히려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여당이 공수처장 추천 과정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는데, 야당이 공수처장 추천을 보이콧하게 되면 공수처가 어떤 수사를 하더라도 불복 시비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공수처 수사 대상의 절반인 3000여 명의 판사가 소속된 사법부는 현행 공수처법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내놓았다. 여기에 또 다른 헌법기관인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여당이 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정부 여당만을 위한 공수처’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법이 시행된 지 5개월도 안 된 상황에서, 초대 공수처장을 임명하기도 전에 법을 다시 개정한다면 향후 정치적 환경이 바뀔 때마다 공수처법은 개정 대상에 오를 것이다. 적어도 헌재 선고 전까지는 개정을 유보해야 한다. 공수처의 성공을 바란다면 여권이 그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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