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사랑[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71〉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0-11-21 03:00수정 2020-11-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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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사랑 ―김승희(1952∼ )


아비는 산에 묻고
내 아기 맘에 묻네,
묻어서
세상은 재가 되었네,
태양의 전설은 사라져가고
전설이 사라져갈 때
재의 영(靈)이 이윽고 입을 열었네
아아 추워-라고,
아아 추워서
아무래도 우리는 달려야 하나,
만물이 태어나기 그 전날까지
아무래도 우리는 달려가야 하나,
아비는 산에 묻고
내 아기 맘에 묻어
사랑은 그냥 춥고
천지는 문득 빙하천지네……


시를 왜 읽을까.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읽는 건 분명 아니다. 현대시의 주류는 송가(頌歌)나 풍월(風月)은 아니다. 읽다 보면 오히려 아픈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라든가 분단, 5월의 광주가 나오는 시들 앞에서는 죄책감도 느끼게 된다.

소설은 재미라도 있지, 수필은 이해라도 쉽지. 시는 재미도 없고 쉽지도 않다. 시를 안 읽어도 먹고사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시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같은 경우에는 속상할 때 읽는다. 시 속에서 비슷하게 속상하고 당황스러운 감정을 발견하면 슬며시 의지하려고 찾는다.

뉴스를 보니 얼마 전에 한 아이가 죽었다. 또 얼마 전에는 다 못 자란 아이가 죽었다. 언제는 이름 모를 A 씨가, 또 B 씨가 죽었다. 생때같은 목숨이 아까워서 기사를 찾아 읽고 읽다 끝내는 시를 읽는다. 40년 전에 나온 얼어붙은 사랑 노래를 읽으며 40년 후의 마음 한 조각을 거기서 발견한다. 동우회 사이트에 억울하다 글 올리고, 청원에 댓글 다는 심정도 시를 읽는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시에서처럼 사랑도 춥고 세상도 춥다. 같은 일에 화내고, 같은 일에 슬퍼하는 마음 조각들마저 찾지 못한다면 얼마나 더 추울까. 시 속에서는 언제든 오늘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을 찾을 수 있다. 나는 혼자여도 마음만은 혼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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