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소니가 보여준 끈끈한 LCD 우정[광화문에서/박형준]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0-11-04 03:00수정 2020-11-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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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2004년 7월 15일 삼성전자 경영진이 충남 아산시로 총출동했다. 소니와의 합작회사 S-LCD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전자가 발행 주식 50%+1주를, 소니가 50%―1주를 각각 가졌다. 최고경영자(CEO) 겸 공동대표는 삼성전자 측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공동대표는 소니 측에서 맡았다. 철저하게 양사 협력 구조였다.

S-LCD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생산해 양사에 절반씩 공급했다. 한일 언론들은 ‘윈윈’으로 평가했다. 이미 LCD 패널을 생산하고 있었던 삼성전자는 대규모 물량 납품처를 확보했고 소니는 안정적으로 LCD 패널을 조달해 TV 왕국 재건을 노렸다.

당시 삼성전자와 소니 모두 TV를 판매하는 경쟁자였다. 그럼에도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 배경에는 양사 필요성뿐 아니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소니 회장의 신뢰 관계도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수시로 양국을 오가며 직접 만나 협의를 하고 골프 회동을 가질 정도로 끈끈했다. 실제 이데이 회장은 S-LCD 출범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양사 합작사업은 7년을 이어가다가 2011년 12월에 막을 내렸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업체 BOE는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대규모로 생산 시설을 늘렸고, 저가 LCD 패널을 쏟아냈다. 2010년 1.7%에 불과했던 9인치 이상 대형 LCD 패널 시장의 점유율을 2017년에 21.5%로 끌어올리며 세계 1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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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소니가 합작사업 종료를 타진했다. S-LCD로부터 전량 공급받은 LCD 패널 단가가 너무 높아 경영 압박이 심했다. 2012년 4월 소니의 CEO로 취임한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사장은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S-LCD 합작을 해소해 조달 비용을 대폭 줄였다”며 솔직하게 털어놨다.

소니가 갑자기 발을 빼면서 삼성전자 입장에선 그동안 소니에 공급해온 LCD 패널 물량을 판매할 다른 수요처를 찾아야 했다. 언론들은 양사 결별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별 잡음 없이 마무리됐다. LCD 사업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가면서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지만 삼성전자는 소니가 보유한 주식 전량을 사들여 S-LCD를 완전자회사로 만들었다.

삼성저팬의 한 퇴직 임원은 “S-LCD 합작사업을 끝냈을 때 소니는 7년 연속 TV 사업 부문에서 적자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S-LCD 생산 패널의 가격을 깎지 않고 항상 제값을 지불했다”며 오히려 소니에 고마워했다. 다만 삼성도 중국 공세를 견디지 못해 결국 올해 3월 LCD 사업을 접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1991년 LCD 사업에 나선 지 약 30년 만이다.

이제 삼성전자와 소니의 LCD 협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30일 ‘징용 문제로부터 일한(한일)을 움직이게 하자’는 제목의 사설에서 민간 분야의 관계 회복 움직임을 전하며 “25일 서거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일한 협력에 입각한 경영자였다”고 보도했다. 10년도 더 된 S-LCD에서 보여준 양사 협력 덕분에 이 회장이 그 같은 언론의 평가를 받는 것 아닌가 싶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삼성#소니#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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