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전세시장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면[광화문에서/김유영]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20-10-30 03:00수정 2020-10-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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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올가을 전세시장은 지난여름의 매매시장을 방불케 한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뛰어 아파트 단지별로 전셋값 신고가(新高價)가 속출한다. 돈이 모자라 매매시장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전세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나마 전세 매물이 있으면 다행. 대단지에서조차 매물이 없어 부동산 중개업소에 번질나게 드나들며 부탁해놓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매물을 바로 채가고, 웬만큼 좋다는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비싼 월세를 감수해야 하는 등 ‘한 번도 경험 못한 시장’을 경험하고 있다.

성난 민심을 읽었는지 대통령은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세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기필코’라는 부사에 힘이 실렸다. 그러면서 임대차법 안착과 질 좋은 공공 임대아파트 공급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과연 지금의 전세대란이 임대차법이 안착되고 좋은 공공임대가 나오면 해결될 문제인가. 정말 그렇게 여긴다면 문제 진단이 한참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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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상황은 임대차법 시행 전부터 예견됐다. 많이들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의 주택 공급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집주인이 자신이 보유한 집에 실거주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보게끔 대출, 세제 규제가 잇달아 쏟아졌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6개월 이내 들어가 살아야 하고, 재건축 아파트도 2년 이상 살아야 입주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식.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신규 아파트에도 집주인이 살게 해서 신축 단지에서 전세 물량이 대거 풀리는 일도 앞으로는 드물게 됐다.

사실 집주인인 동시에 세입자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집 한 채는 있어야 든든해하는 정서상 다른 곳에 집을 사서 세 주고 교육 여건이 좋거나 직장이 가까운 곳에 세 살고 있는 경우다. 반대로 좋은 동네에 집 한 채 마련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전세 끼고 사두고 본인은 전셋값이 싼 곳에 세를 살며 전세를 ‘주거 이동의 사다리’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투기꾼으로 몰아 집값 안정을 빌미로 각종 규제를 강화했다. 이들이 세입자를 내보내고 들어가 사는 일이 연쇄적으로 빚어졌고 맨 끝단의 세입자가 어디론가 밀려나며 전세시장이 불안해졌다. 민간 부문에서 임대 물량을 공급했던 다주택자에게 ‘징벌적 과세’를 하고 임대사업자에게 줬던 세제·금융 혜택을 없애 물량이 줄어드는 점도 한몫했다. 여기에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담은 임대차법이 시행되며 전세난의 불씨를 지폈다.

문제는 앞으로다. 보유세 등 각종 세금 중과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저금리 시대에 세금 부담을 높은 월세로 전가하려는 집주인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금의 전세대란은 각종 규제가 얽히고설켜 전세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져서 빚어진 영향이 크다. 정부는 ‘전세 안정’ 의지를 거듭 밝히지만 전세 찾기에 지친 사람들은 이젠 ‘전세 안녕’ 해야 하지 않느냐며 쓴웃음을 짓는다. 더 나은 집에서 살고 싶고, 더 나은 집을 갖고 싶은 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다. 이런 욕망을 악(惡)으로 몰아세우고 공급을 옥죄는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전세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는 공언은 허언에 그칠 수 있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아비규환#전세시장#기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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