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시테’와 ‘톨레랑스’ 사이에서 고민하는 프랑스

김윤종 파리 특파원 입력 2020-10-22 03:00수정 2020-10-22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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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무함마드 만평 활용 교사 참수… 추모 열기 속 추가 테러 공포 확산
무슬림 증가에도 계속되는 차별
공존으로 테러·혐오 양극단 줄여야
1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의 한 시민이 이슬람교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날 광장에는 ‘토론의 자유’ 수업 중 샤를리 에브도의 무함마드 만평을 사례로 보여줬다가 16일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참수당한 중학교 교사 사뮈엘 파티 씨를 추모하기 위해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18일(현지 시간) 오후 3시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프랑스대혁명의 상징 ‘마리안’상(像)이 있는 이곳이 수만 명의 인파로 꽉 찼다. 이틀 전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비평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을 수업 중 보여줬다는 이유로 체첸계 무슬림 난민 압둘라 안조로프(18)에게 목이 잘려 숨진 중학교 역사교사 사뮈엘 파티 씨(47)를 추모하고 테러를 규탄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샤를리 에브도를 들고 있던 가브리엘 씨(42)는 “거듭된 테러, 프랑스의 이슬람화가 심각하다. 프랑스가 큰일 날 것 같아 나왔다”고 밝혔다. 40대 여성 아나 씨는 “프랑스에 산다면 무슬림도 프랑스의 가치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 공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 라이시테의 역설

“프랑스는 분할될 수 없고, 종교에 의해 통치되지 않는다.”

1958년 개정된 프랑스 헌법 1조는 첫 문장부터 정교(政敎)분리를 적시하고 있다. 이를 ‘라이시테(laicite·세속주의)’라고 한다. 사적 영역에서는 종교 자유를 보장하나 공적 영역에서는 종교적 색채를 띠는 일을 금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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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1894년 프랑스 내에 거세게 불던 반(反)유대주의로 독일 스파이란 억울한 누명을 쓴 유대계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이 있다. 당시 기독교 대 유대교, 진보 대 보수, 군부 대 시민사회 등의 갈등이 극심해지자 정부는 1905년 아예 법으로 라이시테를 못 박았다. 타인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려면 나의 종교적 표현부터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즉, 프랑스 사회는 라이시테를 사회통합 수단이자 더 큰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도구로 여긴다. 이들이 라이시테를 자유 평등 박애와 함께 프랑스 4대 정신으로 여기는 이유다.

반면 무슬림들은 라이시테를 자신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과도한 억압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지만 프랑스인과 외모가 다르고 경제 격차도 심한 무슬림 이민자 2, 3세대는 정부가 라이시테를 이유로 엄격히 금하는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니깝, 부르카 등 이슬람 전통 복장 착용을 ‘분노와 저항의 상징’으로 여긴다.

이들은 정부가 겉으로만 라이시테를 이유로 내세울 뿐 사실상 교묘하게 무슬림을 탄압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라이시테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이를 둘러싼 갈등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 같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소외된 무슬림의 분노

라이시테는 이슬람뿐 아니라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등 다른 종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매년 12월 공공장소에서는 예수 탄생 연극이나 캐럴 합창도 할 수 없어 곳곳에서 적지 않은 분란이 일어난다. 샤를리 에브도 역시 무함마드가 아닌 다른 종교 지도자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 왔다.

왜 무슬림만이 라이시테를 자신에 대한 차별로 여기는 걸까. 이는 프랑스 내 이슬람 인구가 급증한 반면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낮기 때문이라고 르몽드는 분석했다. 프랑스 인구학연구소에 따르면 생드니 등 파리 외곽 무슬림 밀집 지역의 실업률과 빈곤율은 각각 20%, 40%대에 달한다. 프랑스 평균(8∼14%)보다 월등히 높다.

싱크탱크 몽테뉴연구소에 따르면 무슬림의 54%는 자신이 ‘사회에서 겉돌고 있다’고 답했다. 28%는 스스로를 ‘프랑스의 가치관과 대척점에 있다’고 했다. 20대 무슬림 무함마드 씨는 “구직 활동을 할 때 무슬림식 이름이 들리면 면접관 얼굴 표정부터 바뀐다. 실업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는 이런 심리를 악용해 무슬림 청년층을 끌어들인다. 2004∼2017년 프랑스에서 성전(聖戰)을 자처한 범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은 무슬림 137명을 분석한 결과, 평균 연령이 26세에 불과했다. 이들 모두 프랑스인 평균보다 교육 수준이 낮았고 월소득도 1000유로(약 135만 원) 미만이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7년 프랑스 교도소에 수감 중인 무슬림은 전체 교도소 인구의 25.8%(1만7899명)에 달한다.

2015년 1월 전대미문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저질러 무려 12명을 사망케 한 쿠아치 형제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에 물들기 전에는 평범한 알제리계 이민 2세대 청년들이었다. 이처럼 일부 극단주의 무슬림의 잇따른 범죄가 프랑스 정부가 라이시테를 더 강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하고 이것이 무슬림의 분노와 저항을 키운다는 평가가 나온다.

○ 이슬람화가 두려운 프랑스 사회
프랑스 내 무슬림 인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정부는 1872년 인구조사 때부터 특정 신앙과 인종을 밝히는 조사를 금지시켰다. 이 역시 라이시테의 일환이다. 다만 유럽연합(EU) 위원회는 2019년 기준 프랑스 전체 국민의 8.8%를 무슬림으로 추정한다. 미국 조사회사 퓨리서치센터는 2017년 기준 프랑스 내 무슬림 인구를 570만 명으로 추산했다.

1886년 프랑스 내 외국인 수는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했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알제리, 모로코 등 과거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무슬림 인구를 대거 데려왔다. 21세기에는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2015년 ‘시리아 내전’을 거치면서 중동과 기타 지역에서 온 무슬림 이민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는 30년 후 프랑스 전체 인구의 약 20%가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기존 프랑스인들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사회에서는 유럽과 아라비아를 합친 ‘유라비아(Eurabia)’란 단어가 심심찮게 유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 유럽이 아랍화돼 간다는 뜻이다.

이날 레퓌블리크 광장 집회 현장에서 만난 백인계 프랑스인들은 ‘문화전쟁(Civil War)’이란 말도 자주 썼다. 이들은 무슬림 증가로 프랑스 전통 가톨릭과 이슬람 문화 간 갈등이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여론조사회사 입소스에 따르면 국민의 74%는 “이슬람 문화와 프랑스 가치는 양립할 수 없다”고 답했다.

공영방송 프랑스2 탐사보도 결과 프랑스 곳곳에 여성 출입을 금하는 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무슬림 인구가 많은 대도시 외곽에 특히 이런 카페가 많다. 시민 줄리아 씨는 “자유와 평등을 중시하는 프랑스에 여성 출입금지 카페라니 수치스럽다”고 규탄했다.

○ 양극화 해소·톨레랑스 강화 필수

안타깝게도 양측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되긴 어려워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일 “파티 씨 테러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지하는 프랑스 단체 ‘셰이크 야신’이 연루됐다. 이 단체를 해산시킬 것”이라며 라이시테를 고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또한 고인에게 정부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하기로 했다.

우파 성향 주간지 ‘렉스프레스’ 역시 20일 트위터를 통해 “두려움이 우리를 이기도록 놔둘 수 없다”며 무함마드 풍자 만화를 21일 발행되는 주간지에 싣겠다고 밝혔다. 렉스프레스가 무함마드 만화를 싣는 것은 2006년 이후 14년 만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불필요하게 무슬림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표현의 자유’는 물론 존중받아야 할 프랑스의 핵심 가치지만 불필요한 도발로 무슬림을 더 자극할지 모른다는 우려다. 여론도 엇갈린다. 지난달 샤를리 에브도가 직접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시민 59%가 “무함마드 풍자 만화를 다시 게재하는 것을 찬성한다”고 답했다. 29%는 “적절치 못하다”고 했다.

결국 ‘무슬림 테러 증가→무슬림 통제 강화→무슬림 반발→더 큰 테러’란 악순환을 끊으려면 양극화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고 사회 전반의 ‘톨레랑스(tolerance·관용)’ 정신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동전문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무슬림이 동화될 수 있도록 취업, 복지 지원을 꾸준히 시행하면서 이슬람 혐오나 테러라는 양극단을 줄여가려는 사회적 공감대를 장기간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권고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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