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野도 ‘대통령 기획상품’ 만들 때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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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지어도 벌 안 받는 ‘신성귀족’ 탄생
권력·심판기관도 新귀족 비호하나
文, 親盧·좌파·재야 합작 ‘대선 상품’
野도 스토리 있는 ‘신상’ 발굴해야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신성(神聖)귀족의 탄생이다. 죄 지어도 벌 받지 않는 ‘사회적 특수계급’. 우리 헌법은 명시적으로 이를 금지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들어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 인사들의 비리 의혹 시리즈, 특히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를 거치면서 이런 신(新)귀족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 같은 권력기관은 물론 법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 심판기관, 심지어 대법원 같은 최후의 보루마저 이들 신성귀족의 비호를 위해 복무하는 듯하다.

하지만 일반 국민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의 목숨 값은 하찮고 또 하찮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공무원을 그렇게 ‘버린 자식’ 취급하는 게 국가인가. 월북 여부를 떠나 표류한 사람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정황만으로도 북을 응징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사과’ 운운을 무슨 황제의 교지(敎旨)라도 되는 양 받아들고 감읍하는 대통령 이하 여권 인사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게다가 반(反)정부 시위를 막는다고 ‘재인산성’을 쌓고 불심검문까지 자행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런 나라가 올 줄 몰랐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부터 “대통령이 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라고 했는데, 그가 성공했다는 점을 아프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대한민국을 많이 바꾸는 데 성공했다. 불공정하고 불의(不義)하며 불안한 나라로. 그만큼 한국 정치와 우리의 민주주의가 인치(人治)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차기 대통령 선거다. 벌써부터 친문(親文) 사이에선 ‘김경수 대망론’의 물이 올랐다. 문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인 데다 신귀족의 일원인 김 경남지사가 다음 달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문재인의 황태자’로 떠오르는 시나리오다. 권력기관과 사법부가 왼쪽으로 가파르게 기운 마당에 불가능한 그림도 아니다.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여권이기는 해도 아직 ‘우리 사람’은 아니라는 게 친문의 속내다. 여기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법적인 때를 벗겨 이낙연 이재명 김경수 조국 등이 일대 경선판을 이끌어 간다는 구도다.

그런데 야권은? 다음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이다. 1년 5개월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보이는 사람이 없다. 문 정권이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실정(失政)을 저질러도 야당이 뜨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꼰대 보수 이미지도 큰 부담이지만, 현재로선 이렇다 할 미래권력이 보이지 않는 ‘불임정당’이기 때문이다. 인치(人治)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정치와 유권자의 습성상 차기 대통령 후보가 보이지 않는 정당에 눈길이 덜 가게 마련이다.

여기서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탄생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은 원래 친노(親盧)와 좌파·재야 세력이 합작해 만들어낸 ‘대통령 기획상품’이었다. 본인도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고, 정치에 맞는 사람도 아니었다. 평생 친구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정치가 전혀 안 맞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데, 요즘 들어 노무현의 혜안에 이마를 치게 된다.

그런 사람을 친노 핵심과 재야 원로들이 필사적으로 설득해 오늘의 문 대통령을 만든 것이다. 거기엔 한때 폐족(廢族)으로 추락했다가 노무현의 비극으로 기사회생한 친노,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정권을 빼앗긴 좌파 단체와 재야의 절박감이 있었다. 절박하기로 말하자면 지금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이 그보다 더할 것이다. 여당에선 대놓고 ‘이대로 20년’을 외치지만 20년이 아니라 5년만 더 해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절박함으로 야당식 대통령 기획상품을 만들어보라. 그러려면 먼저 상품이 ‘신상(품)’일 필요가 있다. 과거 대선주자 같은 헌 상품의 포장지를 바꿔 재포장해도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데 한계가 있다. 부잣집 도련님 같은 웰빙 이미지의 인사도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 그 삶의 여정에 스토리가 있고, 미래의 비전을 느낄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해야 한다.

이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새 인물을 키우기 위해 움직일 때가 됐다. 그래야 ‘아직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소리도 들어갈 것이다. 김 위원장이든 야권 구(舊)대선주자든 이번 대선만큼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을 버리고 승리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벼랑 끝에 걸린 대한민국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 죄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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