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윤석열의 길, 최재형의 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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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崔 언제까지 그 자리 지킬 건가… 사표 내면 文 코드 인사하겠지만
비정상 일상화된 사회에 충격파, 무기력 보수에 에너지 공급 기폭제
정치적 자산, 나라 위해 쓸 고민하길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에둘러 묻지 않겠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가.

이제껏 ‘정답’은 대체로 이랬다. ‘그래도 그 정도의 소신과 기개가 있는 기관장이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권력기관인 검찰과 헌법기관인 감사원이 정치적 중립을 잃고 편파의 칼을 휘두르거나 기울어진 저울을 갖다대는 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과연 그랬나. 지금까지 못 했다면 앞으로는 그럴 수 있나.

윤 총장에 대해선 결론이 나와 있는 듯하다. 수족은 물론 몸통까지 모두 잘려 머리만 남은 장(長). 검찰총수를 대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태도와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사건에 ‘무혐의’를 들이민 서울동부지검의 행태는 윤 총장으로선 능멸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언뜻 윤 총장이 이 지검장에게 ‘옵티머스 사건 수사 인력을 늘리라’고 지시한 게 먹힌 듯하지만, 수사 인력이 증원된 건 문재인 대통령의 ‘성역 없는 수사’ 지시가 나온 날이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정치권력은 검찰 조직에 손대기를 버거워했다. 권력의 약점을 잡아 레임덕이 올 때까지 묵혔다가 끄집어내거나, 아니면 정권이 바뀐 뒤에라도 보복하는 게 검찰의 속성이었다. 그래서 ‘검찰이야말로 권력 그 자체’라는 말도 있었다. 이런 무소불위 검찰을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검찰개혁이다.

그랬던 검찰이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문 정권의 검찰 장악에 이토록 쉽게 ‘애완검(檢)’이 될 줄은 몰랐다. 추미애 장관이 몇 번 인사권을 휘두르자 바람이 불기도 전에 바짝 엎드리는 검사들이 많았다. 흔히 검찰을 칼에 비유하는데, 이쯤 되면 찌르면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나오는 장난감 칼이다. 이런 검찰이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지, 22일 국감장에 서는 윤석열의 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최재형 감사원장. 입법 사법 행정 3권이 사실상 정권에 장악돼 권력분립이란 헌법정신이 흘러간 옛 노래처럼 들리는 요즘. 아직도 고개를 쳐들고 있어 돋보이는 기관장이다. 그의 삶에 스토리가 있고 주변 관리도 잘돼 있어서 벌써부터 보수 일각에서 대권후보감으로 꼽는 인물이다.

금명간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타당성 감사 결과를 발표하게 돼 초미의 관심이 쏠린다. 결과가 어떻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방향에 일대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당연한 의문. 조기 폐쇄 결정이 잘못됐다는 감사 결과가 나온들 탈원전 정책 방향이 바뀔까.

우리는 모두 답을 안다. 미동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어깃장을 놓아 탈원전에 더 속도를 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 경우 최 원장은 ‘한 번도 경험 못 한’ 문빠들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시달릴 것이다. 그럴 때 최재형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윤석열과 최재형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 한다면 이런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사표 던지기를 바라는 이 정권에 왜 좋은 일을 시키나. 파출소 지나서 경찰서 나온다고, 이런 저런 눈치 안 보고 정권 코드에만 더 충실한 사람을 내리꽂는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몰라서 그러나. 조국 다음에 더 센 추미애, 김동연 다음에 더 말 잘 듣는 홍남기를 기용하지 않았나. 더구나 윤 총장이 물러나면 후임 총장은 이미 내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이성윤 지검장으로….

하지만 우리는 이 정권 들어서 일상화된 비정상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의 불의와 부당에 항거하며 자리를 떨치고 나오는 올곧은 고위공직자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용단이 새로운 스파크를 일으켜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무기력증에 허덕거리는 웰빙 보수정치에 정치적 에너지를 공급할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윤 총장과 최 원장이 정치에 관심이 있는지는 모른다. 윤석열에게는 지나친 검찰주의자라는 평도 있고, 최재형은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지금의 야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치적 자산을 쌓아올린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자산을 현 여권이 재집권하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쓸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윤석열#최재형#정치적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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