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방치된 아이들[횡설수설/송평인]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20-09-19 03:00수정 2020-09-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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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 2층에서 10세와 8세 형제가 엄마 없는 집에서 끼니를 때우려 라면을 끓이다 불을 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에 당황했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평소에도 엄마 대신 동생을 돌보던 형인지라 어린 나이에도 책임감이 몸에 배었던 모양이다. 동생을 책상 아래 좁은 공간으로 피하게 하고 자신은 연기를 피해 침대 위 텐트 속에 있다 쓰러진 듯 형은 상반신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지만 동생은 다리에 1도 화상을 입는 데 그쳤다.

▷아빠 없는 집에서 엄마는 화재 전날부터 오랜 시간 집을 비웠다고 한다. 아이들이 라면 말고는 먹을 게 없어서였는지, 라면이 먹고 싶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보통 중학생은 돼야 불을 다룰 만한 인지능력을 갖춘다. 초등학생은 불과 화재 사이의 인과관계는 이해하지만 작은 불이 얼마나 빨리 큰불로 번질 수 있는지까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어린 형제가 엄마 대신 불을 다뤄야 했던 상황 자체가 마음 아프다. 이번이 아니었더라도 사고는 언제든지 날 수 있었다.

▷두 형제의 엄마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매달 수급비와 자활 근로비 등으로 160만 원 정도를 받아 어렵게 생활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에서 2.5단계로 격상돼 지난달 25일 자활 근로사업이 중단되기 전까지는 매일 시간제 자활 근로에 나갔다고 하니 두 형제는 오래전부터 엄마 없는 집에서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는 데 익숙했을 것이다.

▷‘만약 코로나가 없었다면’ 하고 생각해 봤다. 사고는 월요일인 14일 오전 11시 10분경 발생했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그날 그 시간에 두 형제는 학교에 있었을 테지만 코로나로 인해 등교하지 않고 비대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선진국의 교육행정가들은 불우한 환경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학교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며 코로나에서도 등교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방역의 성과에만 초점을 두는 우리의 교육행정은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가정의 초등학생도 따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엄마와 아빠가 모두 출근하는 오전 8시나 9시부터 온종일 집에 방치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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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의 엄마는 겨우 서른 살이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두 형제가 부모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이라는 인상을 주는 가운데서도 형은 동생을 꼭 데리고 다니고 동생은 형의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형은 아직도 위중한 상태이고 동생은 호전되는 듯하다가 다시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두 형제가 건강하게 회복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코로나로 인한 우울함이 조금은 걷힐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코로나19#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면화재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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