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슬픔 시름’의 목소리[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입력 2020-09-12 03:00수정 2020-09-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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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성연-Danny Boy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1분 59초. ‘Danny Boy’의 익숙한 선율이 약 2분 동안 아무런 반주 없이 목소리로만 전달된다.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의 음성. 목소리는 거칠고 호흡도 짧다. 하지만 세월의 모든 풍파를 겪고 더께가 쌓인 목소리는 오히려 더 감동적으로 들린다. 박성연의 무반주 부분이 끝나면 아름다운 현악 연주가 목소리를 맞이한다.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 새로운 감동을 연출한다. ‘Danny Boy’는 세상에 수없이 많은 버전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박성연의 노래는 특별하다. 그가 이 녹음을 남기고 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8월 23일, 평생 재즈만을 위해 살았던 박성연이 세상을 떠났다. ‘재즈만을 위해 살았다’는 표현은 흔한 수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는 자신의 모든 사재를 털어 재즈 클럽 야누스를 열었고 재즈를 하고자 하는 이들을 무대에 세웠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 서울 신촌에서 문을 연 뒤 대학로와 청담동을 거쳐 지금의 교대역 부근으로 계속해서 옮겨 다닌 역사가 운영의 ‘피로함’과 ‘녹록지 않음’의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박성연은 단 한 번도 야누스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평생을 모아온 LP 1700장을 단돈 1000만 원에 팔아 밀린 월세를 해결할 만큼 야누스를 지키려 했다. 박성연의 의지와 헌신이 있었기에 야누스가 문을 연 1978년을 감히 한국 재즈의 원년이라 말할 수 있게 됐다.

‘헌신’이란 표현을 본다면 아마 박성연은 손사래를 칠 것이다. 그저 노래를 부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도 재즈는 어렵고 낯선 음악이라 인식되는 상황에서 1970년대의 분위기는 짐작이 간다. 오직 재즈만을 부르고 싶었던 박성연은 야누스를 열고 밤마다 노래를 불렀다. 당시 재즈를 하고 싶었던 이들은 박성연만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방송국 전속악단에서, 또 나이트클럽에서 일을 끝낸 연주자들이 모여들어 밤새 재즈를 연주했다. 이런 ‘한국 재즈 1세대’가 있었기에 한국 재즈는 지금껏 명맥을 이어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쉽게 한국 재즈 1세대가 남긴 음반의 수는 많지 않다. 박성연 역시 마찬가지다. 재즈는 현장의 즉흥으로만 교감한다는 생각으로 앨범 녹음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1985년 야누스의 동료들과 함께 만든 ‘박성연과 Jazz At The Janus’를 비롯해 정규 앨범은 석 장이 전부다. ‘Danny Boy’가 담겨 있는 3집 ‘Park Sung Yeon with Strings’는 2013년이 돼서야 나왔다. 1985년의 목소리와 비교하면 2010년대의 목소리는 많이 변했다. ‘거칠어지고 호흡은 짧아졌다’는 표현은 무척 부정적으로 들리겠지만 박성연의 노래에서만은 예외다. 박성연은 한국 재즈 1세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브라보! 재즈 라이프’에서 이런 뭉클한 말을 남겼다. “외롭고 괴로울 때면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나는 블루스를 더 잘 부를 수 있게 될 거야.” 그가 남기고 간 블루스를 듣는다. 세상의 모든 기쁨과 슬픔과 시름이 그 목소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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