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극우도 눈치 보면서 檢警 장악한 정권과 싸울 수 있나”[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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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온건중도보수 지킴운동 나선 이학재 국민의힘 인천시당위원장

지난해 9월 국회 본청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단식 투쟁 중인 이학재 전 의원(현 인천시당위원장). 그는 2일 “당시 19일간 단식 투쟁을 하면서, 우리가 변하지 못해 선거에서 계속 진다면 정권의 폭주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혁신이야말로 집권세력을 견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9월 국회 본청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단식 투쟁 중인 이학재 전 의원(현 인천시당위원장). 그는 2일 “당시 19일간 단식 투쟁을 하면서, 우리가 변하지 못해 선거에서 계속 진다면 정권의 폭주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혁신이야말로 집권세력을 견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이진구 논설위원
이진구 논설위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선 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강성극우와 확실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극렬 ‘엽기토끼’들 때문에 안 돌아오는 집토끼가 훨씬 더 많다는 걸 알면서도 입으로만 들리지도 않게 “우리는 다르다”고 할 뿐. 그런데 최근 서울 부산 인천 경기에서 개혁보수 깃발을 들었던 바른정당 출신 복당파들이 시도당위원장에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밑바닥 당원부터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경각심이 든 걸까.》

―상대가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경욱 전 의원이었는데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표 차이가 커서 솔직히 나도 좀 놀랐다. 민 전 의원이 청와대와 당 대변인도 해 전국적인 인지도가 월등히 높은 데다 작년까지 시당위원장을 연임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내가 3선 의원을 했지만 민 전 의원에 비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싸움도 잘하고. 당원들 사이에서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아주 높기 때문에 민 전 의원이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반 국민 투표였나?) “아니, 선거인단은 100% 당원이고 그중에서도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들이다. 당 소속 지방의원과 당직자 등 당연직 대의원과 인천 지역 13개 당협위원회에서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책임당원들은 일반 당원들보다도 훨씬 더 당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가 높다. 과거와의 차이라면 코로나19 때문에 모바일 경선으로 한 것뿐이다.”

※이 위원장은 413표(58.1%), 민 전 의원은 209표(29.4%)를 얻었다. 선거인단 1000명 중 711명이 투표했다.

―선거인단 성향이 강성우파, TK정서에 가까울 것 같은데….

“흔히 그렇게들 보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경선 결과를 보면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국민의힘 책임당원=극렬 골수우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극렬한 강성극우 인사들이 과잉 대표돼 마치 당원 모두가 그런 것 같은 착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국민은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도….”

―당신은 바른정당에 참여했다 복당했는데… 어려울 때 당을 버린 배신자라는 시각이 있지 않나.

“그런 정서가 있는데… 배신자 프레임도 일부의 생각이 과잉 대표된 면이 있는 것 같다. 나 말고도 최근 부산은 하태경 의원, 경기는 최춘식 의원, 서울은 정양석 전 의원이 시도당위원장이 됐는데 모두 바른정당 출신이다. 경선 과정에서 배신자 공격보다는 오히려 ‘당이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지난 총선 경선 때도 배신자 프레임으로 공격받았는데 내가 후보가 됐다. 수도권 당원들 사이에서는 바른정당 참여가 큰 흠이 아니고, 보수 변화의 노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수도권보다 더 보수적인 곳이 강원도인데 이번 총선에서 강릉에서 당선된 권성동 의원은 바른정당 출신인데다 탄핵 때 법사위원장이었기 때문에 국회 측 탄핵소추위원단장까지 맡았다. 공천도 못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당원들이 찍지 않았으면 당선될 수 있었을까.”

―인천시당이 8·15 광화문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니까. 참석자 중에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뜻을 모르지는 않지만 코로나19와 수해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는데 정치집회를 여는 것은 부적절했다. 일부 강성 목소리가 결코 당 전체의 생각이 아니다. 되레 수도권 지역은 피해를 보고 있다.” (피해라니?) “대다수 국민은 8·15집회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 민심을 읽고 광화문 집회 주최 측과 우리를 동일한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가 있으니까.”

이학재 위원장은 “그동안 변하려는 몸부림을 번번이 주저앉힌 게 내부 비판을 ‘총질’로 모는 행태였다. 그게 진짜 내부총질”이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학재 위원장은 “그동안 변하려는 몸부림을 번번이 주저앉힌 게 내부 비판을 ‘총질’로 모는 행태였다. 그게 진짜 내부총질”이라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당 차원의 참여는 없었지만 지도부는 개인의 참여도 막지 않았다.

“그런 면이 아쉽기는 하다. 국민이 우리 당을 외면하게 만드는 행위나 사람과는 선을 그어야 하는데…. 용기 있게 그 일을 못했다. 소수의 강성 극우도 눈치 보면서 검경을 장악한 정권과 어떻게 싸우나.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수해도 겹쳐 나라가 발칵 뒤집혔는데 광화문에 나가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게 과연 국민의 마음에 들까? 우리 당 참석자들도… 일부러 국민과 당을 괴리시키려고 간 것은 아니라도 실제 그런 결과를 낳은 건 사실 아닌가. 개천절 집회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인천에서는 민경욱 전 의원(연수을)과 유정복 전 인천시장(남동갑)이 참가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차명진 전 의원도 참석했으나 이들은 현재 탈당 상태다.

―아스팔트 강성우파와의 결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곧 열리는 당무감사가 극우척결의 시작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아스팔트 우파,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참여한 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 중에 우리 당을 국민으로부터 멀게 만드는 사람들과 행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호하게 선제적으로 선을 긋지 못했다면 사후에라도 당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야 한다.” (결별해야 한다고 할 때마다 ‘우리끼리 분열하면 안 된다’ ‘뺄셈의 정치로는 이길 수 없다’며 덮고 가다보니 지금에 이른 것 아닌가.)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며 19일간 단식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내가 굶다가 죽어도 저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우리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것으로는 폭주를 멈출 수 없다는 걸. 이유는, 우리 당이 변하지 않아 국민이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의 폭주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 당 혁신이라는 건가.

“탄핵 이후 우리가 제대로 변했다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올해 총선을 앞두고 조국 사태를 맞았다면, 민주당이 그토록 억지스러운 강변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조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 전에 자진사퇴시켰을 것이다. 선거에서 불리하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 게 열린우리당 출신들이다. 진심으로 정권의 폭주에 가슴을 치고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뼈를 깎는 혁신으로 당 지지율을 올리면 된다. 그러면 민주당이 앞장서서 정권의 폭주를 막을 것이다.” (비대위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나.) “김 위원장이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무릎 사죄도 하고 당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뼈를 깎았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당내에 그런 아픔과 진통을 겪은 사람이 없지 않나. 만약 우리가 변하지 못해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을 진다면, 선거를 이기고 지는 문제를 넘어 성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된다.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며 “야당은 대통령 공격이 선거 전략상 유리하고, 여당도 대통령 방어보다 차별화해 거리를 두는 것이 유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그동안에도 쓴소리나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강성극우들의 공격으로 다 묻혔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벌 떼처럼 달려드는데… 소신 발언을 하는 쪽은 다 개인이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앞서 말했지만 적을 앞에 두고 내부 총질한다고 하고, 싫으면 나가라고 하고… 그래서 당 안팎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온건합리중도 보수 지킴이’ 역할을 하려고 한다.” (온건보수 지킴이?) “당에 올바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극렬강성들의 비난과 공격을 혼자 감당하지 않게 해주려고 한다. 지지성명도 내고, 부당한 공격에는 연대해서 같이 싸우는… 외롭지 않게. 여야를 떠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은 집단을 이뤄서 대응하고 싸우는 걸 잘 못한다. 안 하려고도 하고…. 그러다보니 좌우 극단에 있는 사람들 수가 더 적은데도 이기지를 못한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목소리를 안 내다보니 극단적인 사람들이 마치 양 진영의 대표인 것처럼 과잉 대표된 거지. 온건중도합리적인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세다는 걸 강성들에게 보여줄 작정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기권했다고 민주당 의원들이 금태섭 전 의원을 물어뜯을 때 우리는 그들의 행태를 비난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소수의 올바른 목소리가 나올 때는 지켜준 적이 있었나. 올바른 당내 변화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계파 이익을 위해 저항하는 세력들은 견제하는… 그 싸움을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려고 한다. 아스팔트 우파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면 이 당의 주류가 온건합리적인 보수로 바뀌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 이학재(56)…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대선 후보일 때 비서실장을 맡았던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 박 대통령 당선일 다음 날 임명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친박과 거리를 뒀다. 탄핵 이후에는 바른정당·바른미래당에 참여했다 복당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당내 온건중도보수 지킴운동#이학재 국민의힘 인천시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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