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부 국경에서 벌어진 잔혹한 학살극[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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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투먼시에서 바라본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노동자구의 풍경. 이곳에서 지난달 수많은 간부들이 처형,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DB
중국 투먼시에서 바라본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노동자구의 풍경. 이곳에서 지난달 수많은 간부들이 처형,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한반도 최북단이자 두만강 옆에 위치한 함경북도 온성에서 지난달 중순 끔찍한 학살극이 벌어졌다. 그런데 북한이 국경을 어찌나 꽁꽁 틀어막았는지 예전이라면 탈북민들의 전화 통화를 통해 바로 다음 날 전해질 이 소식이 지금까지 한국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과 연계된 정보 라인들이 거의 다 차단됐다는 의미다.

온성 사건은 지난달 중국에서 누군가가 몰래 두만강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간 일이 발단이 됐다. 밀수꾼이나 탈북자일 가능성도 있지만, 온성 맞은편 투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귀국하지 못해 1월부터 발이 묶인 북한 근로자가 수백 명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 중 한 명이 몰래 집에 가려 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 사람은 곧 체포됐다. 그런데 김정은이 북부 국경이 뚫린 것에 크게 화를 내며 무자비한 처벌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7월 탈북 청년이 임진강을 헤엄쳐 북으로 돌아간 뒤 김정은은 개성을 폐쇄하고 경비 담당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한 바 있다. 그러곤 국가초특급비상방역위원회를 국가비상방역사령부로 기능을 강화하고 방역규정을 어기면 총살, 무기징역을 선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온성에서 밀입국이 발각된 것이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밀입국 구간 경비를 담당했던 국경경비대 중대장, 정치지도원, 책임보위지도원, 군 보위부 봉쇄부부장, 군 보안서 기동순찰대장, 밀입국자가 소속된 직장의 당 위원장 및 지배인이 처형됐다. 처형장에는 관계자들을 동원해 참관시켰는데, 얼마나 잔인하게 집행했는지 실신하는 사람, 바지에 오줌을 싸는 사람 등이 속출했다고 한다. 수백 발의 총탄을 퍼부어 사람을 완전 형체도 없이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온성군 당위원장, 군 보위부장, 보위부 정치부장, 군 보안서장, 군 보안서 정치부장, 평양에 있는 국경경비총국장, 정치부국장은 연대 책임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고 한다. 무기징역이면 한국 같으면 흉악한 살인범이나 부여받는 처벌이다. 온성에 밀입국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감방에서 죽게 됐다.

이뿐 아니라 온성군 보위부, 보안서, 해당 지역 국경경비대를 해산 및 전원 제대시켜 농민으로 보냈다. 처형자와 무기징역형을 받은 사람들의 가족도 전부 심심산골로 추방했다.

온성군 보위부나 보안서, 국경경비대는 탈북자들을 워낙 악독하게 다루는 인간들이 가득해서 굳이 동정하고 싶진 않다.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하루아침에 토사구팽 신세가 됐으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해산된 보위부, 보안서, 국경경비대 대신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파견돼 국경 경비 공백을 막고 있다고 한다.

요즘 북한 주민들은 ‘개성 사건’에 이은 ‘온성 사건’ 때문에 숨도 못 쉴 상황이다. 이 사건 이후 온성 회령 무산 등 북부 국경 지역들이 봉쇄돼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됐다. 국경 지역 사람들은 산에 있는 개인 밭, 즉 소토지를 경작하기 위해 이동하려 해도 모두 대장에 기록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도처에 전파탐지기가 있어 국경 사람들은 깊은 산에 가서 한국과 전화통화를 하는데, 꼼꼼한 기록과 수색으로 한국과 연락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북한을 취재해 온 기자도 요즘 ‘이 정도로 철저한 폐쇄가 가능하구나’라고 혀를 찰 정도다.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북한에서 자행되는 잔혹한 처벌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2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700명 이상이 방역규정 위반으로 처벌된 사실은 몇 달 전 필자 칼럼에 소개한 바 있다. 온성 사건과 별개로 8월 20일에도 북한의 최대 국경 관문인 신의주 세관에서 80여 명 검사 전원이 방역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수감됐고 가족은 농촌으로 추방됐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엔 인민적 풍모를 가진 지도자인 것처럼 포장했다. ‘인민들이 허리띠를 더는 조이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선언한 뒤, 허물없이 가정집에 들어가고 허름한 목선을 타고 외진 섬에 가서 군인을 업어주는 등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모습은 사라졌다. 잔인한 처벌의 강도만 높아지고 있다. 하는 일들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화풀이를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처형하면서 풀고 있어 끔찍하다. 더 끔찍한 건 이런 잔인함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 언제까지 피바람이 계속 불지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함경북도 온성#학살극#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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