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온기와 함께[이즈미의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박수 쳐 주신 만큼 복 받아가세요.”

넉넉한 미소와 인자한 인상의 선생님은 언제나 강연을 마치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을 향해 공손히 예를 갖춰 말씀하셨다. ‘한옥 전도사’ 신영훈 선생님이 5월 28일 86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나는 한옥을 보면 늘 선생님의 둥글고 미소 짓는 얼굴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한국 전통건축의 큰 기둥이다. 평생 전국 곳곳을 다니며 옛 건축물의 역사와 전통, 문화적 의미를 찾는 데 헌신했다. 문화재청에서 오래 근무하며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 숭례문과 송광사 대웅보전, 경주 토함산 석불사 중수공사 감독관을 지낸 대목장이다. 파리의 고암 이응노 화백 기념관인 고암서방, 멕시코의 한옥정자 등을 지어 건축 한류의 원조이기도 했다. 그 후 한옥문화원을 설립해 ‘한옥 짓기 실습’ ‘아파트를 한옥처럼 가꾸는 일’ ‘한옥의 현대화’ 등 다양한 강좌를 개설해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의 조화를 끊임없이 추구하기도 했다.

내가 한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살면서부터였다. 팔판동은 삼청동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옛 한옥집이 많이 남아 있던 곳으로 동네 지인의 한옥에 놀러 가면서 호기심을 갖게 됐다. 햇수로 17년간 그곳에서 지내며 한옥에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집을 보러 다녔지만, 결국 한옥에 거처를 구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한사모(한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모임을 만들어 한옥 지킴이로 작은 시민운동에 참여했고 한옥에 대해 공부하며 답사를 다니기도 했다.

학생 때 글로 알고 있었던 신영훈 선생님을 이때 직접 만났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도 했고, 답사에도 몇 차례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의 해설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구체적이며 섬세하고 신기한 내용들이었고, 그 건축물이 사용되던 옛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창덕궁의 후원을 함께 답사하며 배웠던 경험이다. 그곳에서 왕세자 등에게 축소된 상징물과 자연을 통해서 제왕학을 절로 학습시켰다는 이야기였다. 전통건축물이나 관련 구조물들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깊은 뜻과 철학을 담고 있다는 설명에 감탄했다. 선생님의 답사는 차분하게 진행됐고 창덕궁처럼 팀별로 순서에 맞춰 관람하는 일반 관광객의 안내와 마주치는 경우 그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한쪽으로 비키게 하는 등 배려하는 모습에서 답사의 매너까지 배웠다.

이달 21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 보물전 2017-2019’라는 전시를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함께 마련한 전시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지정된 국보와 보물 157건 중 83건 196점을 공개하는 자리다. 국보와 보물 공개 전시로는 국내 사상 최대 규모다. 강원 평창군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전남 구례군 천은사 극락보전, 경북 예천군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 강원 강릉시 경포대, 경북 안동시 체화정, 전북 진안군 수선루 등 6건은 영상으로 소개되어 있다. 영상은 드론으로 촬영한 듯 조감으로 시작해 건축물에 다가가며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에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2019년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잇달아 지정되며 한국 목조건물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한옥 건축물들은 전국에 자리하고 있어 쉽게 접할 수 있고 보는 이들에게 미소를 떠올리게 하며 마음을 치유해 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해외 대신 한옥을 찾아 국내를 돌아보면 어떨까? 한적한 자연 속의 정자에서 잠시 자신을 뒤돌아보는 것도 좋고, 직접 갈 수 없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소개되는 다양한 건축물을 만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신영훈 선생님의 맛깔스럽고 구수한 목소리, ‘복 받아가라’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한옥의 나뭇결 하나하나에 온기를 담아주던 추억들, 선생님의 인품과 한옥이 하나가 되어 이뤄진 여러 기억들. 앞으로도 선생님은 한옥과 함께 나와 선생님을 만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한옥#온기#전통건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