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에만 눈물이 난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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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만 눈물이 난다 ― 허연(1966∼)


어차피 나는
더 나은 일을 알지 못하므로
강물이 내게 어떤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강물이 내게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
한 번도 서러워하지 않은 채
강물이 하는 일을 지켜본다
나는 오직 강물에만 집중하고
강물에만 눈물이 난다
저 천년의 행진이 서럽지 않은 건
한 번도 되돌아간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중략)




한 시인의 강연회에 갔다. 강연이 끝나고 70대 시인에게 20대 청중이 질문했다. “친했던 친구와 어색해져서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시에 대한 질문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러다 곧 이해하게 되었다. 시란 마음의 행방을 다루는 문학이다. 청년은 질문이 향해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의외의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굳이 잘 지내야 합니까. 그 인연의 무게는 그게 끝일 수도 있어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질문한 사람은 “아!”라고 탄식했다. 한 청년의 질문과, 질문에 묻어 있는 괴로움과, 질문에 대한 답변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오늘, 나, 우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잊히지 않는 질문을 위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답변을 위해 오늘은 허연 시인의 시를 소개한다. 허 시인은 쓸쓸한 괴로움이라는 주제를 탁월하게 다루는 이다. 서럽고 분해서 펄쩍펄쩍 뛰는 마음이 있다고 치자. 그 마음이 나는 어쩌느냐고 토로한다면 시인은 대답 대신 이 시를 내밀 것이다. 나가서 천년도 넘게 흐르는 강물을 지켜봐라. 강물은 지난 모든 것들을 품고 나서도 여전히 앞으로 흐른다. 때로는 내버려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강물 같은 대답을 강물처럼 오래 기억하고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강물에만 눈물이 난다#허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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