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55〉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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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 ―신동집(1924∼2003)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별을 돌아보고
늦은 밤의 창문을 나는 닫는다.
어디선가 지구의 저쪽 켠에서
말 없이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
차갑고 뜨거운 그의 얼굴은
그러나 너그러이 나를 대한다.
나즉히 나는 묵례를 보낸다.
혹시는 나의 잠을 지켜 줄 사람인가
지향없이 나의 밤을 헤매일 사람인가
그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중략)

나쁜 시절은 특히나 젊은이의 마음을 잔인하게 조각낸다. 1950년대 전후(戰後) 역시 그러했다. 시인은 시로 말할 수밖에 없어서, 젊은 시인들은 절망으로 점철된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그래서 나온 시집이 그 유명한 ‘한국전후문제시집’(1961년)이다. 신동집 시인도 여기에 모인 30인 중의 하나였다. 청년 시인은 이후 노인이 될 때까지 50년간 30여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특히나 전후에 출발한 시인에게는 공통적으로 ‘존재’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쟁 때문에 인간 존재 자체가 퍽 위태로워졌고 시인들은 결여된 그 의미를 찾아야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존재 탐색에서 시작된 신동집 시인은 ‘행인의 시학’으로 나아가게 된다. “시인은 언제나 존재의 고향을 향해 걸어가는 박명의 귀환자이며 머물 길 없는 행인이다”는 것이 시인의 견해였다.

존재, 행인, 여행자. 이런 단어들을 곁에 써 놓고 ‘어떤 사람’을 읽으면 여운이 더욱 그윽해진다. 나는 이 지구별에 찾아온 여행자. 어린 왕자처럼 잠시 왔다 곧 떠날 방랑자이다. 그리고 오늘을 마감하는 나의 저편에서는 또 다른 여행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너도 있구나. 저이도 나와 같구나. 이런 교감이 말없이 이루어지니 마음이 쓸쓸하면서 동시에 벅차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어떤 사람#신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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