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우기 갈등겪는 유럽… 새 대안 찾기 움직임 활발[광화문에서/김윤종]

김윤종 파리 특파원 입력 2020-06-18 03:00수정 2020-06-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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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파리 특파원
16일 오후 프랑스 파리 7구에 위치한 의회의사당. 정문 오른쪽에 위치한 동상 뒤로 경찰 4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기자가 동상 주위를 맴돌자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동상의 주인공은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장바티스트 콜베르(1619∼1683). 콜베르는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을 앞세워 프랑스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러나 당시 식민지 노예법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로 알려지면서 동상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경계를 강화한 것이다.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반(反)인종차별 시위가 유럽으로 번지며 노예제, 인종주의와 관련된 역사 속 인물들의 동상이 훼손되고 있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 동상마저 그가 알제리 독립운동을 탄압했다는 이유로 페인트 공격을 받았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동상도 훼손될 위험에 처했다.


‘동상 파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예제나 제국주의 관련 인물과 연관된 건물, 거리 이름도 이참에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프랑스 의회의사당에 있는 ‘콜베르홀’이 대표적 예다. 재무부 청사가 있는 파리 베르시 지구에도 콜베르란 이름이 붙은 건물이 있다. 장마르크 에로 전 총리 등 정치인들까지 “콜베르란 명칭을 없애야 한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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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의무교육을 실시해 ‘프랑스 공교육의 아버지’로 불린 쥘 페리 전 총리의 이름이 들어간 파리 시내 학교들도 명칭을 삭제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페리 전 총리가 인종주의 발언을 한 탓이다. 파리 16구의 뷔조 거리 역시 사라질 판이다. 거리 이름이 19세기 알제리인 학살을 주도한 장군 토마 로베르 뷔조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대 여론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현재의 잣대로 역사 속 인물을 단죄해 거리와 건물 이름을 삭제하거나 동상을 부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5일 “역사에서 그 어떤 흔적도 지우면 안 된다”며 반대했다. 그럼에도 시베트 은디아예 정부 대변인은 “인종 차별에 경종을 울린다는 측면에서 일부 이름은 지울 필요가 있다”며 찬성했다.

찬반 의견 모두 일리가 있어 더 큰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우려됐다. 그러자 중립적 대안을 찾자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한 시민운동가는 파리 시내 도로 표지판 옆에 1920년 흑인 여성 최초로 소르본대에 입학한 폴레트 나르달의 이름을 넣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화제가 됐다. 갈등을 키우며 이름을 삭제하기보다는 인종 평등에 기여한 새로운 인물도 거리나 건물 이름에 많이 담아내자는 아이디어다.

노예 유입 항구였던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의 그라몽 거리에서도 색다른 실험이 추진됐다. 이 거리 이름은 1700년대 노예무역을 주도한 자크 바르텔레미 그라몽에서 유래했다. 이에 거리 이름 표지판 옆에 관련 설명을 달아 역사 속 과오도 정확히 알리자는 시도가 생겼다. 일상 속 역사교육을 대안으로 삼은 것이다.

과거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아픈 역사를 눈가림하는 것도 현재의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 지우기 찬반 갈등을 ‘제3의 길’로 극복하려는 건설적 시도가 전 세계로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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