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과 ‘사기꾼 세대’[오늘과 내일/김광현]

김광현 논설위원 입력 2020-06-18 03:00수정 2020-06-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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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개혁하는 척 시늉만 하고 성과는 全無
부모보다 못살 첫 자식 세대에 연금 폭탄까지
김광현 논설위원
월드컵 축구 4강의 주역이면서 지금은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이영표 선수는 현란한 헛다리 짚기 페인트 모션으로 유명했다. 마치 이쪽으로 찰 것처럼 하다가 반대 방향으로 패스하거나 드리블해 나가는 속임수 동작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축구도 아닌 국민연금 개혁에서 여러 차례 국민을 상대로 페인트 모션을 취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정부가 새로 만들 안은 없다”면서 “대선에서 주요 어젠다로 오르길 바란다”고 밝힌 것이 세 번째였다. 현 정부 내 연금개혁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

첫 번째 속임수 동작은 2018년 8월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에서 약 1년간의 논의 끝에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15%로 올리는 방안을 마련했을 때였다. 임기 초기 그나마 추진 가능성이 높을 때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다”면서 퇴짜를 놓았다. 그리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연금개혁을 맡겼다. 경사노위는 경총, 노총 등 대립적 이해관계자 등이 참여한 기구다. 국민연금 같은 전 국민적 사안에 대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더구나 최대 최강 노조단체인 민노총은 경사노위에 들어와 있지도 않았다.


두 번째는 경사노위가 어정쩡하게 만든 3가지 시나리오를 작년 9월 국회에 떠넘긴 때다. 연금개혁은 현재 납부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거나, 은퇴 후에 적게 받거나, 더 내고 적게 받는 수밖에 없다. 이런 유권자에게 인기 없는 정책을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국회에 던진 것은 하지 말자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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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은 문 대통령의 지난 대선공약이다. 보험료는 올리지 않고 나중에 받는 소득대체율은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애당초 ‘증세 없는 복지’보다 더 심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약(空約)이었다.

이대로 뭉개고 가면 누가 이득이고, 누가 손해를 볼까? 현행 제도로는 30년쯤 뒤에 기금이 바닥난다. 국민연금은 저축했다가 나중에 타가는 금융상품이 아니라 돈 버는 세대가 은퇴한 세대를 먹여 살리는 사회보험 성격의 제도다. 기금이 바닥났다고 해도 국가가 있는 한 지급을 중단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그해 거둬서 그해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는데 은퇴자 대비 노동인구가 변수다.

그런데 이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현재 소득이 가장 많은 연령층인 40, 50대가 태어난 시기, 즉 1960∼70년대는 출생아가 매년 80만∼100만 명이었다. 2010년 출생아는 47만 명, 작년에는 30만 명이었다. 올해는 27만 명 정도로 예상된다. 부모 세대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지금의 어린이 청년세대가 커서 한창 돈 벌 나이에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나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청년세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취업도 잘 안되고, 저성장이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다 국민연금 폭탄까지 떠넘긴다는 것은 해도 너무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사기범죄율 1위다. 사기란 상대를 기망(欺罔), 즉 속여서 재산상 이득을 얻는 행위를 말한다. 개혁을 하는 척 시늉만 하면서 말 못하는 자식 세대에 경제적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상관없다는 식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나 다름없다.

소득이 많건 적건 당장 보험료를 더 내고 나중에 적게 받는 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살면서 자식 세대들 등쳐먹은 사기꾼 세대였다는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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