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보다 조준점이 중요하다[동아광장/하준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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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극복 위한 재정 풀기… 금액보단 ‘어디 쓸지’ 목적이 핵심
기업-일자리 붕괴부터 우선 막아야… 단 ‘금리 급등’ 상황은 경계 필요
효율적 집행으로 국민 신뢰 얻어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19 위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엄청난 규모로 재정을 풀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은 국내총생산(GDP)의 5∼15%를 쓴다고 한다. 우리는 1, 2차 추경을 합해도 GDP의 1% 수준이니 신중한 편이다. 하지만 상황 전개에 따라선 더 써야 할 수도 있다. 국가재정을 얼마나 어떻게 써야 할까.

해답의 실마리는 이번 위기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학자들의 최근 논의를 종합해 보면 코로나19 경제위기는 한마디로 ‘경제의 여러 부문 간 순환이 단절돼 발생하는 위기’다. 즉,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대면 서비스 등 특정 부문이 인위적으로 ‘셧다운’되면서 여러 부문 간에 얽혀 있는 교환관계가 끊겨 전반적 위기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빵 공장은 가동되는데 헬스클럽은 문을 닫는 상황이다. 헬스클럽 직원들이 일을 못 해 빵을 사먹지 못하게 되면 빵 공장의 매출과 일자리까지도 위험해진다. 보통의 불황처럼 수요가 전반적으로 부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피해 부문의 수요와 생산이 먼저 급격히 줄고 이것이 다른 부문으로 전염되다가 금융 부문까지 어려워지는 식으로 위기가 확산된다.

주목할 것은, 초기 단계에선 헬스클럽 직원들은 저축한 돈을 찾거나 빚을 내 빵을 사는 반면, 빵 공장 직원들은 헬스클럽에다 쓸 돈을 쓰지 못해 저축을 오히려 늘리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선 모두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는 피해자를 ‘타기팅(targeting)’해서 이들이 고용을 유지하고 빵 소비를 줄이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 작업에 소요되는 금액이 지금 재정이 관여해야 할 최소한이다.

이것도 사실 큰 금액이고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걱정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나 위기 상황에서 건전성 수치가 과거 경로를 일시적으로 이탈하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도 용인하는 일이다. 재정 확대에 비판적이던 알베르토 알레시나 미 하버드대 교수도 이번 위기를 맞아 “누구도 바이러스 때문에 일자리를 잃지 않고, 만약 잃는다면 새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소득이 보장된다. 어느 기업도 바이러스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목표에 따라 적자재정을 써야 한다면서 예산 수치보다 목표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얼마든지 쓰겠다는 자세가 궁극적으로는 지출을 줄인다고 한다.

우리도 이 목표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다만 기술적으로 시장의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 금융 및 외환시장이 민감해진 시기에 국채를 수백조 원씩 한꺼번에 쏟아내 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재정 확대를 주장해온 올리비에 블랑샤르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도 시장이 불안할 땐 근거 없는 공포가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작용해 국채금리, 즉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일 수 있는데, 이를 피하려면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주는 등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시장 불안을 피하면서 자금을 신속히 충분하게 쓰려면 재정과 금융이 협력해야 한다. 정부가 지급보증 등으로 길을 열어주면 한국은행이 자금을 투입하고 특수은행과 여타 금융기관이 협력해 돈을 경제의 구석구석까지 전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작은 재정지출도 금융의 지렛대 효과를 활용하면 대규모 지출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모든 나라가 재정을 풀 때는 우리가 예전보다 꽤 많이 쓰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건전해 보인다. 다만 재정이 낭비되지 않고 시스템을 튼튼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만 시장을 안심시킬 수 있다. 수치 자체보다는 정책목표가 흔들리는 것이 더 큰 불안요인이다.

사실 한국은 객관적으로 재정여력이 크다. 국가채무비율 38%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10%보다 낮다. 저금리로 인해 국채 이자지급 부담은 낮아져 왔다. 자세히 보면 작년에 국가부채가 늘긴 했으나 국가자산은 더 많이 쌓여 순자산이 113조 원이나 늘었다(증가율 25.5%). 또 순대외채권국으로서 나라가 외국 돈에 의존하는 상황도 아니니 채무비율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자산들이 있다. 20년 전에 20% 밑이던 국가채무비율이 지금 40% 근처까지 왔지만 그동안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계속 높아지지 않았나. 재정정책도 방역처럼 목표에 충실하게 신속 정확 충분하게, 또 효율적으로 해서 국민을 안심시키고 나중에 더 큰 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막자.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코로나19#재정위기#지급보증#금리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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