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헌고 학생들의 외침 외면하지 말아야[광화문에서/이성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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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정책사회부 차장
이성호 정책사회부 차장
“깨어있는 학생들에게 호소합니다. 교육현장의 주인은 학생과 학부모입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진 말이다. 이날 서울 인헌고 전국학생수호연합이 주최한 집회에 학생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 이동해 시위를 이어갔다. 학생들은 “교육 현장을 정치교사들의 특정 사상을 주입하는 사육장으로 만든 ‘교육농단’을 고발하겠다”며 “조희연 교육감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교사의 ‘정치편향’ 논란을 처음 제기한 최인호 군(18)은 “오늘은 학생 혁명의 날”이라고 표현했다.

학생들의 집회가 열리던 시간 인헌고에서는 최 군과 관련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이번 학폭위는 최 군이 학교 측의 대응에 정신적 피해를 주장하면서 열리게 됐다. 최 군에 따르면 정치편향에 대한 내부고발 후인 10월 28일 학교 측은 “학교를 둘러싼 왜곡되고 과장된 보도에 대해서는 여러분(학생)들이 지혜롭게 판단해주길 바란다” “외부 소음들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등의 내용을 방송했다. 최 군은 학교 측의 일방적 주장에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학생 생활지도를 위한 교육행위라는 의견이다. 학폭위 결과는 사흘 후 개인에게 통지될 예정이다.

교사들의 정치편향 문제가 불거진 건 인헌고가 사실상 처음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교사들의 위태로운 교육은 끊이지 않았다. 올 10월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 수행평가를 위해 독후감용 책 두 권을 소개했다. 이어 조건을 달았다. 첫 번째 책을 선택하면 최고 점수로 A등급을, 두 번째 책을 고르면 B등급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 첫 번째 책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정치권 인사가 쓴 것이었다. 지난해 한 고교 교사는 수업 중 1980년대 학생운동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진행됐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덧붙였다. 교육당국은 두 교사에게 어떤 조치를 내렸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징계는 없었다. ‘정치편향의 의도가 없다’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등이 그 이유였다.

두 사례를 포함해 최근 3년간 서울시교육청에 접수된 ‘정치편향’ 수업 민원은 모두 14건. 교사가 특정 정치인이나 정부를 노골적으로 지지 또는 비판하고, 국가보안법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같은 사안에 대놓고 찬반 한쪽을 강조한 경우다. 그러나 1건을 제외한 13건은 감사는커녕 특별장학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연히 징계 없이 ‘자체 종결’로 처리됐다.

교권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학생에게 교사의 위상은 부모 못지않다. 정치편향 논란을 교사의 실수 탓으로 그냥 넘기는 게 걱정스러운 이유다. 조사 과정에서 학생 의견이 정확히 반영됐는지도 의문이다. 학생은 무조건 정치 현안에 눈 감고 귀 닫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라고 윽박지를 학부모도 이제 많지 않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뉴스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그런 말은 통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교가 원칙을 지키면 된다.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교육이다.
 
이성호 정책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인헌고#전국학생수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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