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과 처벌[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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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당시 21세이던 A 씨는 남편 B 씨와 결혼했다. 자신을 끔찍이 아껴주는 모습에 반했기 때문이다. B 씨의 누나가 “동생이 전에 교제하던 여성을 폭행해 만신창이가 됐다”며 만류했지만 굽히지 않았다. 얼마 안 지나 남편은 상습적으로 A 씨를 폭행했고, 보다 못한 지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하지만 A 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 남편은 어떤 격리조치도 받지 않았다. 어느 날 6시간의 매질을 견디다 못한 A 씨는 이혼 소송을 내고 집을 나왔지만 이혼숙려기간 중 주소를 알아낸 남편에 의해 살해됐다.

▷첫 신고 당시 남편 B 씨가 처벌받지 않은 것은 폭행이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죄는 수사·기소는 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다. 일본 헌법 가안에서 영향을 받아 1953년 도입됐는데, 정작 일본은 도입하지 않았다. 미국도 가해자가 반의사불벌죄를 악용해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부작용이 많자 강제 기소정책을 도입해 가해자 처벌을 강화했다. 우리도 국회에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담은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가정폭력은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처벌에 어려움이 많다. 지난해 4월 서울북부지법에서는 50대 어머니가 흉기로 자신을 찌른 아들을 감싸다 위증죄로 벌금 300만 원을 받았다. 처음과 달리 법정에서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바꿨는데, 흉기 사용은 특수폭행으로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찌른 아들을 감싸주려는 마음에 위증을 한 것이다.

▷한 베트남 여성이 남편에게 갈비뼈와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무참히 폭행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반의사불벌죄 폐지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남편의 생활비가 없으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데다 체류권이 남편에게 종속돼 있어 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여성도 신고하라는 지인의 말에 “애 아빠인데…”라며 망설였고 결국 지인이 신고했다고 한다.

▷가족에게 맞았다는 고통과 함께 가족이라 용서해야 하는 고통까지 감수해야 하는 게 가정폭력이다. 심하게 맞고도 경찰의 진단서 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부모나 아내도 많다. 상해진단서를 제출하면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는 폭행치상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아내가 남편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쉬운 결심은 아닐 것이다. 남편을 감옥에 넣은 독한 사람이라는 삐딱한 시선도 주변에 있을 수 있고, 생계도 무거운 고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가정폭력의 추방을 위해선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래야 가정도 산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가정폭력#이주여성폭행#반의사불벌죄#가정폭력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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