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지구의 날 행사 현장에서 ‘아픈 지구를 구해주세요’라는 구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인식의 이면에는 인류가 지구를 위해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자선적인 태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구 시스템의 역사를 보면 현실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산소가 처음 등장한 28억 년 전 지구에서는 혐기성 미생물들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등장한 산소는 혐기성 미생물들에게는 유독 가스여서 대(大)멸종이 초래되었다. 이 사건 이후에도 지구의 역사에서는 공룡의 멸종을 포함해 급작스러운 지구 환경의 변화로 대멸종에 이르는 상황이 종종 확인된다. 이러한 역사를 보면 우리가 환경을 파괴하여 인류가 더 이상 지구에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지구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생명체들을 다시 품게 될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지구에 인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지구가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의 환경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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