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사철에는 재판하지 말라는 법원 노조의 억지 받아준 행정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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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법원 일반직 인사가 있는 매년 1월 초와 7월 초에 재판을 열지 않기로 법원노조와 합의했다. 법관의 재판 진행을 돕는 직원들이 업무 파악을 제대로 못 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으니 업무 인수인계에 필요한 시간을 달라는 상식 밖의 이유에서다.

법원은 현재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휴정 기간에는 구속 피고인이 있는 형사재판 등을 제외하고는 재판을 열지 않는다. 매년 2월 법관 정기인사 직후에도 새 재판부가 전임 재판부가 진행한 심리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휴지기를 갖는다. 법원 직원들의 업무 인수인계에 시간이 필요하다면 인사를 그런 시기에 맞춰서 하면 될 일이다. 업무 인수인계를 이유로 본업인 재판을 열지 말라는 것은 민간 기업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번 합의는 법원행정처와 법원노조가 자신들의 본분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케 한다. 재판 당사자인 국민이 법원에 바라는 것은 신속하고 엄정한 재판이다. 많은 법관이 수당도 못 받는 야근을 해가며 묵묵히 일하는 것도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업무 인수인계를 핑계로 소송 당사자들에게 재판 지연을 감내하라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복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법원행정처는 이번 합의가 법관들에게 휴정을 권고하는 것일 뿐이며, 강제한 것이 아니어서 문제가 없다지만 이는 구차한 변명이다. 재판 일정을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법관의 권한이다. 법원행정처는 애초에 법원노조와 이 문제에 대해 협의할 권한이 없었다. 그런데도 노조에 덜컥 선심을 써놓고 뒷감당은 법관들에게 하라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대법원은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법행정권 남용을 근절하겠다고 수차례 다짐해왔다. 법관의 재판을 방해하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이런 일이야말로 사라져야 할 사법행정권 남용이다.
#법원행정처#일반직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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