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재윤]요리사의 숨은 열정 기억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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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
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
요리사는 힘든 직업이다. 불 앞에서 일하는 노동 강도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음식문화를 창조하는 역할에 비해 주목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젊은 요리사들이 스타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목해야 할 셰프가 있다. 바로 최근 향년 67세 젊은 나이에 영면에 든 고 고재길 셰프다. 40여 년간 조리 현장을 지킨 그의 공로는 그 어떤 세계적인 셰프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고 셰프는 세계미식가협회의 유일한 한국인 정회원이자, 국가 VIP 만찬을 위해 크고 작은 행사를 진두지휘하며 한식의 대중화 및 세계화를 위해 살아왔다. 그는 40년 동안 조리 현장에 몸담으며 한국 대표 메뉴 개발에 매진해 수많은 레시피를 개발한 요리 명인이다. 그가 남긴 1만여 개의 레시피에는 서민 음식인 육개장, 갈비탕, 삼계탕부터 일식, 중식 등 세계 각국의 요리까지 담겨 있다.

2007년 대한민국 조리명인, 2011년 대한민국 신지식인상, 2014년 대한민국산업포장을 수상하며 조리사들의 모범이 돼 왔다. 2016년에는 우수숙련기술자에 이름을 올렸고, 한식요리부문 문화체육장관상을 수상했다. 2008년 세계한식요리대회 미국 뉴욕대회 심사위원장을 지냈고, 2010년 한국국제요리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셰프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다. 반면 올해 초 프랑스의 위대한 셰프 중 한 명인 폴 보퀴즈가 91세로 세상을 떠나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보퀴즈는 프랑스 요리를 바꾼 인물로, 전국의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애도했다. 보퀴즈가 프랑스 요리를 바꿨다면, 고 셰프는 한국 요리를 바꿨다고 감히 평하고 싶다.

그는 쉐라톤워커힐 호텔 외식사업부 수석조리장으로 근무하다 2007년 종합식품기업 아워홈 수석조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아워홈에서 만드는 모든 음식은 정직한 요리’라는 요리철학과 신념을 실천했다. 사측은 그를 기리기 위해 유족에게 공로패를 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먹고 누군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는 게 최고의 기쁨이라던 그는, ‘고재길’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일궈내는 꿈이 있었다. 서재에 남긴 각종 훈장과 상장, 그리고 65권의 책으로 묶인 1만여 개의 레시피가 그의 발자취를 말해주고 있다.
 
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
#요리사#고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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