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비행기의 습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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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항공 개척자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에 성공한 해가 1903년. 10년이 조금 지나 항공기는 병기로 데뷔했다. 1차 세계대전의 공중전이 ‘하늘에서 최신 병기를 타고 벌인 기사의 대결’이라고 불렸지만 전쟁의 향방을 바꿀 만큼 위력적이지는 않았다.

항공전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은 스페인 내전(1936∼1939년)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을 지원하면서 독일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독일군의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은 새 항공전술을 선보였고 이 전술 중 하나가 오늘날엔 극도로 지탄을 받는 민간인 대상의 도시폭격이다. 독일 공군의 활약에 고통을 겪던 스페인 혁명군 병사 중에 조지 오웰이 있었다. 이상적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은 기자로 스페인에 왔다가 하는 일 없이 식량만 축내고 있는 자신이 싫어져서 파시스트 한 명은 죽이겠다는 각오로 의용군에 입대했다.

오웰은 하늘에서 새로운 전술을 시현하고 있는 ‘미래의 병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조금 엉뚱한 감상을 남겼다.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중 하나는 모든 악다구니와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싸우느니 차라리 달아나겠다고 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했다.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람들은 참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이런 격한 분노가 찾아왔을 때 오웰은 하늘 위 공포의 병기를 쳐다보며 위안을 얻었다. ‘다음 전쟁에선 몸에 총알구멍이 난 후방의 애국자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오웰의 예감은 적중해서 항공기는 유례없는 참극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희생자는 또 애꿎은 사람들뿐이었다. 현실 근처에도 오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선을 그어 놓고, 이쪽은 정의와 선이고 저쪽은 악이라고 구분하며 선동과 분노만 조장하는 이론가들의 행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웰의 진짜 불길한 예감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을 찢고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데는 폭격보다 무책임한 지식이 더 무섭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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