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틸러슨, 해고 통지를 받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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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전 미국 국무장관(앞)이 14일 사임 회견 후 국무부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렉스 틸러슨 전 미국 국무장관(앞)이 14일 사임 회견 후 국무부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미국 정치 용어 중에는 스포츠에서 유래한 것이 많습니다. 정치와 스포츠는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일까요.

‘Jump the gun’은 육상선수가 심판의 총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튀어나갈 때 쓰는 말입니다. ‘섣불리 행동하다’라는 뜻이지요.

이 표현은 선거 개표 때 자주 등장합니다. 개표 방송을 보면 승리가 확실히 결정되기도 전에 ‘승자(winner)’ 스티커를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 개표까지 하면 승자가 뒤집어지기도 하는데 말이죠. 이런 걸 ‘jump the gun’이라고 합니다.

CNN은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2008년 ‘선거결과 발표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나옵니다. ‘We won’t jump the gun before the winner is confirmed.’ ‘우리는 승자가 확정되기 전에 섣불리 발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겁니다. 그 후에도 CNN은 수차례 승자 오보를 냈습니다만….

‘Lose the locker room’이라는 표현 역시 스포츠에서 유래했습니다.

팀이 연패를 당합니다.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책임은 감독이 집니다. 팀이 연패를 할 경우 감독은 선수들이 모이는 라커룸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미국 스포츠의 관례입니다. 선수들에게 더 이상 존경과 신뢰를 받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Lose the locker room’(라커룸을 잃어버리다, 라커룸에 들어가지 못하다)은 스포츠에서 감독이 선수들의 존경을 받지 못할 때 쓰는 말입니다.

정치에서는 어떻게 쓰일까요. 이달 중순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습니다. 뉴욕타임스는 ‘He has lost the locker room’이라고 썼습니다.

틸러슨 전 장관이 해고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무부라는 조직을 통솔하는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틸러슨 전 장관은 자신이 신뢰하는 몇몇 부하들하고만 대화하고 다른 직원들과는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틸러슨 전 장관의 총애를 받는 부하들은 다른 국무부 직원들에게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Don’t call us. We’ll call you”(우리에게 전화하지 말라. 필요하면 우리가 당신에게 전화하겠다). 틸러슨 전 장관과 대다수 국무부 직원들 사이에 언로(言路)가 막힌 거죠. 틸러슨 전 장관이 해임된다는 말에 적잖은 국무부 직원들이 속으로 “Hooray(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틸러슨 전 장관과 같은 리더는 부하들의 존경을 받기 힘듭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lose the locker room’이라는 표현을 쓴 겁니다.

뉴욕타임스는 ‘He’s lost the locker room’ 뒤에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It is very hard to get it back.’

‘한번 잃은 신뢰와 존경심은 다시 찾기 힘들다.’ 리더들이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jump the gun#섣불리 행동하다#lose the locker room#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해고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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