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평가단은 그제 메르스 확산의 한 원인으로 한국의 의료체계와 병간호 문화를 지적했다. 후쿠다 게이지 WHO 사무차장은 “일부 병원의 응급실이 너무 붐볐고 다인(多人) 병실에 여러 명의 환자가 함께 지냈다”며 “한국의 특정 관습과 관행이 메르스 전파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중보건 부문의 더 강력한 체제를 위해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진적인 한국 의료체계와 간병 및 문병 실태에 대한 뼈아픈 진단이다.
한국에서는 일반 병원을 믿지 못하는 환자들이 무작정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정부가 이 같은 의료전달 체계의 왜곡을 막기 위해 상급병원 진료의 본인 부담을 늘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손꼽히는 대형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일단 해당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고 보는 일도 빈번하다. 국내 빅5 병원의 응급의료 청구건수는 2011년 16만 건에서 작년에는 30만 건으로 2배 가깝게 늘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대형병원 응급실은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에 근본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자국 내에서 연간 170만 건의 병원 감염이 발생해 9만9000명이 숨진다고 추산했다. 한국은 병간호 문화가 독특하고 감염 환자도 다른 환자와 함께 병실을 쓰는 다인실 구조로 인해 병원 내 감염이 훨씬 쉬운 환경이다. 작년 전국 26개 의료기관을 조사한 결과 간병인·보호자가 상주하는 병동의 감염 발생률은 그렇지 않은 병동보다 3배 더 높았다. 간병인 등이 비좁은 병실에서 숙식을 함께하는 환경에선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 각국은 병원에 고용된 간호사들이 환자를 24시간 돌본다. 간병인 고용에 따른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감염과 위생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간호사가 간병 업무를 전담하는 포괄간호제를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한다. 인사치레를 위해 문병을 꼭 가야 하는 한국의 문화나, 한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순례하듯 하는 ‘의료 쇼핑’ 행태도 감염 위험을 키우고 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한국 의료의 부끄러운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은 감염에 취약하다. 병원은 어떤 대중 시설보다 철저한 감염 관리가 필수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병원 시스템과 병간호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의료 관광을 미래성장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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