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성 前회장 죽음의 의미, 놓친 것 없는지 되돌아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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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통해 나타난 민심과 성완종 파문

《 성완종 리스트가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관련 기사가 넘쳐나는 가운데 독자들은 어떤 기사를 원할까. 민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11일 ‘재·보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과 성완종 파문’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11일 본사 회의실에서 ‘재·보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과 성완종 파문’을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고희경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성태 위원, 박원재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11일 본사 회의실에서 ‘재·보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과 성완종 파문’을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고희경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성태 위원, 박원재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참석자>
● 위원장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위원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박원재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김사중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촉발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사회적 파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파문은 이완구 총리 사퇴에 이어 지난달 말 재·보선에서 제1야당 참패,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 전 총리의 검찰 소환까지 이어졌습니다. 재·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무엇이고 성 회장 자살 사건에서 언론이 짚어야 할 대목은 무엇인지 논의해 보겠습니다.

이진강 위원장=4·29 재·보선 민심과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대부분의 언론이 방향이나 핵심을 명확히 잡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아쉬운 점들이 보였습니다. 재·보선 결과에 대해 민심이 달라졌다, 민생과 경제 쪽으로 민심이 변화를 보였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민심은 변한 게 아니라 본래 그랬지 않나 싶습니다. 성완종 리스트를 다루는 것 외에도, 조심스럽긴 하지만 성 회장의 죽음에 관한 또 다른 의미를 언론에서 좀더 깊이 있게 다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의 초점이 성 회장이 남긴 리스트, 육성 녹음, 형사사건 등에만 집중된 측면이 있습니다. 성 회장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짚었어야 했습니다.

고희경 위원=‘성완종 리스트’라는 것에 지나치게 방점이 찍혀 전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성 회장이 누구한테 돈을 줬다더라 식의 추적에만 집중되고 있습니다. 신문 보도 내용들이 비슷하게 따라가고 있다는 게 아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조차도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김성태 위원=이번 재·보선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 많았는데, 성완종 사건이 불거지면서 정치적 공방으로 연결됨에 따라 언론들이 선거 결과를 과대 해석한 면도 있습니다. 재·보선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민심의 변화 운운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투표율이 지극히 낮은 상황임에도 성완종 리스트와 맞물려 선거 결과를 과대 해석하면서 정쟁 구도로 보도한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이 위원장=성 회장 죽음의 의미와 관련해, 성 회장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져 막았다는 측면도 있다는 신동아 기사에 공감한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자살자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면서 ‘반전살인’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감을 느꼈을 때, 그 사람을 죽이고 싶지만 죽이지는 못하고, 그 사람과 자기를 동일시해서 자기가 죽어 버리는 것이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단편적인 얘기들을 따라잡는 데 급급한 나머지 성완종이라는 인물의 개인사, 가족 관계, 인맥, 정치 및 기업 활동 등을 둘러싼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취재에 소홀했습니다. 가령 그의 의원 시절 발언록, 기업 공시자료, 회계자료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면 좀더 일찍 비정상적인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가 자살하면서 당사자의 반론을 들을 수 없게 된 상황이라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등을 우려해 이런 취재가 위축된 측면도 있습니다.

김 위원=망자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논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메모로 남긴 몇몇 정치인의 이름이 증거 능력이 있는가를 따지기 전에 당연히 맞다고 받아들이면서 사안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원재 스탠더드에디터=선거 얘기로 잠깐 돌아가 보면, 이번 재·보선 결과에 대해 역시 민심은 정쟁보다는 민생을 챙기라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에서 보듯 국회 차원에서의 논의가 국민이 원하는 바 하고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이 최근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국회가 비록 선출된 권력이지만 권한의 남용이나 오용을 막을 수 있는 견제장치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재·보선에서 드러난 민심이 민생이라면 국회가 제대로 가동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누리꾼들은 야당의 정권심판론보다는 여당의 지역일꾼론이 유권자들에겐 더 와 닿았고, 야당 내부의 분열 등이 이어지면서 결국 야권 지지자를 투표소로 불러 모으는 데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오히려 여권 내 위기감을 부르면서 여당 표의 결집을 불렀고, 성완종 파문이 결국 정치권 부패를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야가 함께 의심을 받는 풍토에서 야권 표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 위원=민심은 이미 정치를 불신하고 있습니다. 성 회장 자살은 ‘저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야’라고 더 확신하게 되는 계기로 볼 수 있습니다. 언론이 이 같은 인식에서 새로운 기사 방향을 출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위원장=정치인들이 성완종 리스트 폭로를 아전인수로 이용하려고 했지만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성 회장의 자살 문제는 민감하지만 왜 이런 것이 일어났는지, 당시의 심리 상태는 어땠는지 언론이 나중에라도 한번쯤 제대로 다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김 위원=일반 독자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 성완종 리스트가 얼마나 중요한 이슈일까 생각해봤습니다. 현재 언론사가 그걸 싣기 위해 할애하는 지면의 양과 방송의 양을 본다면 여전히 정치적 공방 쪽에 많이 치우친 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성 회장 자살 동기의 또 다른 한 축은 잘못된 관행과 문화로 볼 수 있습니다. 정치권과 경제계의 잘못된 관행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언론에서 정치문화 바꾸자, 정경유착 바꾸자고 하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너무 식상한 주제라는 것도 고민이 될 것 같습니다.

박 스탠더드에디터=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어떤 게 사실이고 과장인지 밝혀내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이런 관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히 추적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속보를 파헤치는 것과 함께 전체적인 큰 기획, 즉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과 균형을 잡아주는 것, 두 가지 모두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고 위원=성 회장이 자살을 택함으로써 이 사람이 왜 수사를 받았어야 했는지가 사라진 면도 있습니다. 본질에서 멀어지는 일들에 대한 속보 경쟁도 치열하지만 본질에 대한 부분은 다시 강조되었으면 합니다.

―후일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언론이 시각을 좀 달리했어야 했다는 부분을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시죠.

이 위원장=성완종 회장의 죽음은 그 자체로서 무엇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진실이 묻혀버린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뿐 아니라 사건의 시발점이 됐던 배임 횡령 등에 대한 수사가 좀더 면밀하고 강하게 진행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김 위원=이번 사건에서, 죽으면서까지 설마 거짓말을 했을까라고 많은 사람이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나타났다고 보입니다.

이 위원장=그런 게 오류일 수 있습니다. 죽기 직전에 말하는 것은 진실에 가깝다라는 식으로 자칫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김 위원=이번 일련의 보도를 보면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 상태와 관련한 기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람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다뤄볼 만한 분야로 보입니다.

이 위원장=이번 사건과 보도가 우리 사회를 건전한 사회로 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김정은 인턴기자 성신여대 심리학과 졸업
#재보선#민심#성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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