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29>웃는 신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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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신부는 큭큭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좀 난감한 심정이 되어 버렸다. 대학 친구 재만이가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간다기에, 그것도 열한 살이나 어린 신부를 맞이한다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사회를 보겠다고 나섰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러니까 주례 선생님이 막 신랑에 대한 덕담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신랑 김재만 군은 대학 재학 시절부터 성실하고 눈에 띄는 학생이었으며… 졸업 이후에는 다양한 사회생활 경험을 쌓고… 현재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예비 청년 창업가로서….’ 주례 선생님은 재만이와 나의 대학교 은사였다. 전공은 행정법이었지만, 한학에 조예가 깊고 난초를 즐겨 가꾸는, 재작년 학교에서 정년퇴임한 분이었다. 그러니까 그 주례사는 선생님 입장에선 최대한 거짓말을 피한, 약간의 윤색으로 치장한 말이었다. 뭐, 대부분의 주례사가 다 그렇지 않던가. 그렇다고 많은 하객들과 양가 부모님 앞에서 이놈은 대학 내내 술을 퍼마셨으며, 그래도 기특하게도 강의에는 꼬박꼬박 들어왔고, 하지만 수업 시간 내내 술 냄새 풀풀 풍기며 잠을 퍼 잤으며, 졸업 후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운다, 돈만 갖다 버리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으며, 현재 카페를 하겠다며 부모님에게 계속 사업자금을 대달라고 종용하고 있는 젊은이입니다… 뭐, 이럴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바로 그 대목에서부터 신부는 웃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객들을 등지고 서서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신부를 정면으로 바라본 채 주례사를 하던 선생님의 이마는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신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입술도 앙다물고 있었지만, 큭큭큭, 연신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한번 웃기 시작하면 잘 멈추지 못하는 여자 같았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그건 재만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주례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느라, 남몰래 툭툭 팔꿈치로 신부를 치며 진정시키느라, 재만이의 귀밑머리 아래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례사가 끝나고 신랑 신부가 하객들을 향해 뒤돌아섰을 때, 다행히 신부의 얼굴은 웃음을 거두고 다시 무표정하고 조신한 새색시의 그것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한숨을 돌리고 다음 식순을 진행해 나가려는 순간… 다시 신부의 웃음이 터져 버렸다. 이번엔 신부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는 순서에서 터져 버린 것이었다. 신부의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사위와 딸에게 인사를 받으려는 찰나, 신부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예의 또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니, 뭐 저런 신부가 다 있담. 나는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원래 저 순간엔 모든 신부들과 신부의 어머니들이 눈물을 쏟지 않던가. 감정에 북받쳐 신부 화장이니 뭐니, 다 망쳐버리지 않던가. 한데, 우는 어머니 앞에서 웃는 신부라니. 여기저기 하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런데도 신부의 터진 웃음은 멈추질 않고… 그 이후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더듬더듬 식순에 적혀 있는 글자들만 빠르게 읽어 나갔다. 결혼식은 예정되어 있던 축가도 생략하고 신랑 신부의 행진으로 서둘러 마무리되었다.

피로연도 끝나고 하객들도 모두 빠져나간 뒤, 나는 그제야 재만이와 함께 예식장 뒤편 주차장에 서서 담배를 한 대 나눠 피울 수 있었다.

네 신부 도대체 뭐냐? 왜 그렇게 자꾸 웃어대는 거야?

말도 마. 폐백하면서 시어머니한테 꾸중 들은 신부는 지구상에서 걔가 유일할 거다.

아니, 그러니까 이유가 뭐야? 무슨 병이 있나?

재만이는 내 말에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이윽고 이런 말을 내게 해주었다.

우리 장모님이 젊은 시절부터 혼자 몸으로 딸을 키웠잖냐. 그래서 기죽지 말라고 딸을 더 자주 웃겼다나봐. 그게 버릇이 됐대.

응? 아까 보니까 신부 아버님도 계시던데?

나는 뚱한 표정으로 재만이에게 물었다.

어, 그분? 그분 아르바이트야. 그래서 더 웃겼다나봐. 엄마가 자기 시집보내는 순간까지도 자기를 웃겨주는 것 같아서….

나는 어쩐지 마음이 조금 짠해져서, 신부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졌다. 함께 웃어주고 싶어졌다.

이기호 소설가
#웃는 신부#재만#피로연#담배#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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