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대받는 아이에게는 정부가 부모 역할 해줘야 한다

  • 동아일보

22명. 지난 한 해 우리사회의 무관심 속에 학대받고 숨진 아이들의 수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아동학대 사망자가 119명이나 됐다. 신체적 정서적으로 어른에게 저항이 불가능한 아이를 학대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끔찍한 범죄요, 문명사회의 수치다. 작년 여덟 살 난 의붓딸을 소풍 가는 날 아침부터 때려 숨지게 한 ‘울산 계모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명시한 특례법이 29일부터 시행된다.

울산 계모의 학대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지만 실제로는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다수(76.2%)가 친부모다. 하지만 친부모의 자녀 학대에 국가가 개입하기는 쉽지 않다. 신고를 받고 출동해도 부모가 “훈육이지 학대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면 도리가 없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이를 보호하는 도중에도 친권자인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그만이다.

특례법은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 즉시 아동과 부모를 격리시키고, 부모의 친권을 최대 4개월까지 정지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는 부모의 분신으로 보는 동양 문화권에서 친권제한은 파격적 조치이지만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부모보다는 그래도 국가가 낫다.

칠곡과 울산 계모에게 4월 1심에서 징역 10년(구형량 20년)과 징역 15년(구형량 사형)이 각각 선고돼 ‘솜방망이 판결’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특례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형량을 높였고, 교사 의사 간호사 등이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데도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도 500만 원으로 올렸다. 이웃의 침묵과 무지 속에서 아동학대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음을 감안하면 적절한 조치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로부터 격리된 아이들을 보호하고 치유하며 정상적으로 커나갈 수 있게 해주는 인프라다. 학대받은 아이가 제때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지 못하면 또 다른 가해자로 성장할 우려가 있다. 일시적이기는 해도 국가가 친권을 뺏을 때는 부모를 대신해 확실하게 책임져야 한다. 피해아동 보호를 위한 예산과 인력 확충이 꼭 필요한 이유다.
#아동학대#특례법#부모#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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