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 대북정책 펼 시간 적어 2016년 총선까지가 가장 적기
신뢰프로세스-통일대박론 메울 구체적인 프로그램 제시 시급
핵문제 연계도 명확한 선 긋길… 靑-부처간 역할분담 분명히 해
정책 혼란 일으킬 소지 없애야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 ‘동북아 평화구상’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두 축으로 한 야심 찬 외교안보정책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집권 1년 반이 지나도록 두 정책 모두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구상은 일본과의 역사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고 남북관계 역시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나 북한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외교력에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와 재개 과정을 보면서 국내외에서는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다르다는 기대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연초 갑작스레 나온 통일대박론을 보면서 의아해 했던 사람이 적지 않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제외하곤 특기할 만한 남북관계 개선이 없자 전임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의 한반도와 주변 상황은 대북정책에 여유를 부릴 만큼 녹록지 않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마땅한 대안도 없을뿐더러 이미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정책적 동력은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중국은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만 북한이 갖고 있는 전략적 가치를 포기할 준비는 안 되어 있으며 오히려 동북3성을 중심으로 한 대북 교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꾸준히 진행하는 가운데 강온전략으로 남한을 흔들어대면서 일본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구상한 대북정책을 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아마 지금부터 다음 총선이 있는 2016년 봄까지가 적기일 것이다. 보다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펴기 위해선 주요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우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통일대박론의 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전자는 말 그대로 프로세스, 즉 대북 정책의 방식이고 후자는 대북정책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둘 다 정책적 로드맵은 아니다. 드레스덴 선언이 그나마 구체적인 정책안을 담고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정치적 수사를 넘어선 좀 더 구체적인 남북 프로그램과 이를 실행할 방안이 하루 빨리 제시돼야 한다.
둘째는 대북정책을 실행할 때 어느 선까지 핵문제와 연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부분의 대북 프로그램을 핵문제에 연계한 반면 박근혜 정부는 인도적 지원 등은 핵과 연계하지 않는 투 트랙으로 가겠다고 선언했으나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을 보면 전임 정부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비핵화는 양보할 수 없는 중차대한 안보 사안이지만 대북정책을 펴 가는 데 있어서 일정 부분은 핵문제와 연계하지 않을 방침이라면 이를 과감하게 실천하여 남북관계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셋째는 주요 대북제재인 5·24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대북제재 수단으로 이루어진 것인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5·24조치가 남아 있는 한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북한보다는 오히려 대북 사업을 하던 남한기업에 더 부정적 영향을 미친 점도 고려해야 한다. 5·24조치의 해소나 완화가 어렵다면 새로운 조치를 통해서라도 현실적인 남북관계 개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와대와 정부 내 관련 부처 간의 역할 분담과 협력 문제이다. 특히 최근에 활동을 시작한 통일준비위원회의 역할과 임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대북정책의 주무 부처인 통일부 외에도 자문기구로는 대통령이 의장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있고 국가 외교 안보 통일 문제를 총괄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가안보실이 있다. 자칫 옥상옥이 되고 관련 기관 간의 혼란과 갈등을 가져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산적한 문제가 많이 있지만 대북정책에도 여유가 없다. 한반도 문제는 결국 주변 강대국이 아닌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야 하며 요동치는 동북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남북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제2기 내각의 구성이 완료된 만큼 박근혜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실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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